창세기 강해(24)-사래의 거절감과 불신앙 (창세기 16:1-16)

거절당한 기억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거절을 경험해요.
개인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말이에요.
프로포즈의 거절일 수도 있고, 어떤 요청이 거부당한 경험일 수도 있어요.
이 거절이라는 경험은 생각보다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쓰라리고, 비통하고, 오래 기억 속에 남아요.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서로 협력하고 칭찬하는 훈련을 시켜주고 싶어서
40명의 아이들을 모두 앞으로 불러냈어요.
한쪽에는 선물이 가득 쌓여 있었고,
누군가를 칭찬하면 그 칭찬의 대상이 호명되어 선물을 받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 앞에 남아 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아이들의 얼굴도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어요.
“왜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까?”
그 질문이 아이들 마음속에 자라나기 시작한 겁니다.
마침내 세 명이 남았을 때,
그중 한 아이가 큰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고 해요.
끝까지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거절당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그 아이가 청년이 되어
자기 인생을 바꾼 사건으로 소개한 이야기입니다.
그 거절의 기억은 이 청년을 극도로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
세상과 자신을 향한 두려움 속에 가두어 버렸어요.
거절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이 청년은 훗날 빌 게이츠에게 영향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고,
엉뚱하게도 빌 게이츠에게 편지를 씁니다.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당신 회사를 사겠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건재하니까요.
그런데 이 청년이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기 인생을 바꾼 실험을 시작합니다.
바로 거절을 일부러 경험하는 프로젝트였어요.
낯선 사람에게 돈을 빌려보기도 하고,
햄버거 가게에서 리필을 요청해보기도 하고,
남의 집 화단에 꽃을 심게 해달라고 부탁해보는 겁니다.
당연히 수없이 거절당하고, 모욕도 당합니다.
그런데 이 실험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닫게 돼요.
첫째,
거절은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거절을 당하면 그 거절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해요.
하지만 거절은 상황일 뿐, 존재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둘째,
거절의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머물 때,
의외로 대화가 시작되고 관계가 열리더라는 겁니다.
“왜 저를 거절하셨나요?”라고 묻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황당해하면서도 진심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회들이 열렸다는 거예요.
약속이 더딜 때 찾아오는 거절감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10년이 지났어요.
하나님은 분명히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씨,
그리고 그 씨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자식은 여전히 없고, 나이는 더 들었어요.
성경을 숲처럼 바라보면,
아브라함의 삶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사람은 기다리지 못하고,
그러나 하나님은 끝내 언약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자손의 약속이 더뎌지자
사라의 마음속에는 거절감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거절을 자기 존재에 대입해 버려요.
“나는 이제 끝났다.”
사래의 선택과 인간적인 해결책
창세기 16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창세기 16장 1절)
그리고 사래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세기 16장 2절)
이 제안은 고대 사회에서는 낯선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자손을 잇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대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래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스스로 규정해 버렸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태어난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약속으로 난 자
이 사건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라디아서 4장 22–23절)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이고,
이삭은 약속으로 난 자입니다.
이 둘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신앙 안에 늘 존재하는 두 방향을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따를 것인가.
13년의 침묵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창세기 16장 16절)
그 후 13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장 1절)
이 말씀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을 전제로 한 질책입니다.
“왜 내 약속을 기다리지 않았느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하나님은 한 번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시간과 역사 속에서, 실패와 실수를 통해
천천히 빚어 가십니다.
깨진 언약과 십자가
하나님은 이미 창세기 15장에서
자신의 존재와 영광을 걸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세기 15장 17절)
이 언약은 일방적이었고,
깨지면 죽음이 따르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인간 편에서 깨졌습니다.
죽어야 할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지만,
대신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는 십자가 없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거절은 끝이 아니라 연단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없이 거절당합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것을 거절이라 생각하느냐?
아니다. 이 기다림 속에서
내 관심은 오직 너다.”
거절을 자신의 존재로 규정하지 마세요.
그 거절은 훗날
하나님의 축복과 선물이 됩니다.
이 말씀이
흔들리는 기도의 자리 위에
단단한 약속의 심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