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18)-톨레도트,족보 (창세기 10:1-5,32)



창세기강해(18)-톨레도트,족보 (창세기 10:1-5,32)

18번째, 톨레도트/족보라는 제목으로 전하신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족보 본문을 왜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

오늘은 창세기 10장을 마치는 말씀입니다. 설교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태복음 1장과 창세기 10장입니다. 마태복음은 그래도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지만, 오늘 본문은 셈·함·야벳 이후로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이름들이 끝없이 나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족보처럼 보이지만, 이 족보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선교적 의도가 깊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족보를 가리키는 단어는 ‘톨레도트’입니다. 이 단어는 ‘족보’, ‘계보’, ‘기원’, ‘이야기’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 톨레도트는 단순한 혈통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담은 족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오늘 족보는 노아 개인의 족보가 아니라, 노아의 세 아들—야벳, 함, 셈—의 족보입니다.



야벳의 족보와 흩어짐의 시작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창세기 10장 1절)

여기서 ‘족보'라는 표현이 바로 ‘톨레도트’입니다. 야벳이라는 이름은 ‘창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인종적으로는 북유럽과 지중해 연안, 넓게는 스페인까지 포함하는 지역으로 확장됩니다.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세기 10장 2–5절)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나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은 창세기 11장에 나오고, 지금 10장은 이미 흩어진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기록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 의미 중심의 배열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배열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함의 족보와 가나안의 등장

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세기 10장 6절)

함이라는 이름은 ‘거무스레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후손들은 아프리카와 이디오피아 지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피부색의 차이에 대한 여러 환경적 가설이 있지만, 성경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주제는 아니므로 참고 정도로만 알고 넘어가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인물은 네 번째 아들, 가나안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함의 죄에 대한 결과는 가나안에게 선언됩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세기 9장 24–25절)

이 저주가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는 창세기 10장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창세기 10장 15–20절)

이 족속들은 모두 가나안 땅의 원주민입니다. 모세오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기록된 책입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는 함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고, 그 땅은 이미 개간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땅을 정복하고 종으로 삼습니다.

노아의 족장 선언은 감정적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정확히 성취되는 예언이었습니다.



니므롯과 바벨탑의 기원

함의 족보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인물이 등장합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세기 10장 8–9절)

니므롯은 힘과 크기를 숭상하는 문화의 대표 인물입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니며”
(창세기 10장 10절)

바로 이곳에서 바벨탑이 세워집니다. 바벨탑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흩어짐을 면하고,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단어가 ‘므로닥’, 즉 ‘신’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들의 이름에는 항상 이 표현이 붙습니다.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열왕기하 25장 27절)

“바벨론의 왕 므로닥발라단이…”
(이사야 39장 1절)

바벨론 왕은 곧 신이었고, 니므롯은 그 신화의 시조가 됩니다.



셈의 족보와 구원의 혈통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창세기 10장 21절)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창세기 10장 22절)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르박삿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시조입니다.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창세기 11장 10절)

그리고 족보는 결국 이렇게 이어집니다.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세기 11장 26절)

아브람, 곧 아브라함입니다. 이 혈통을 통해 하나님은 단수로 표현된 ‘씨’,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셨습니다.



흩어짐은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심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창세기 10장 24–25절)

벨렉이라는 이름은 ‘나뉘다’는 뜻입니다. 바벨탑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벨탑 사건을 족보 뒤에 배치함으로써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온 땅에 흩어지는 것은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명령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9장 1절)

이것은 아담에게 주신 창조 명령의 갱신입니다.



70명의 족보와 선교적 완성

창세기 10장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수는 정확히 70명입니다.
야벳 14명, 함 30명, 셈 26명, 합하여 70명입니다.

이 숫자는 이후 성경에서 완전한 공동체의 상징이 됩니다. 산헤드린 공회도 70명이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도 70명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20절)

흩어짐은 저주가 아니라, 복음이 퍼져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흩어져야 할 족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10장의 족보는 흩어지는 족보입니다. 아니, 흩어져야 할 족보입니다. 홍수 심판의 부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래 마음이 담긴 선교적 족보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온 땅에 생명을 충만케 하기를 원하셨고, 그 뜻은 결국 셈의 혈통을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 족보는 오늘 우리에게도 말합니다.
흩어지라는 명령은 심판이 아니라, 복음의 소명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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