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37)-우연과 모름(창세기 28:1-22)


창세기 강해(37)-우연과 모름(창세기 28:1-22)

이 글은 송태근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중
37번째, 우연과 모름이라는 제목으로 
전하신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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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처럼 보이는 밤

기도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 마음에 꼭 들게, 센스 있게 기도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벧엘에서 드린 서원 기도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인간적인 기도 한 편을 만나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만 존재하는 깊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지요.
이제 그 장면을 본문을 따라 차분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창세기 28장 10절)

사람의 인생에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운동선수에게 ‘인생 경기’가 있듯이, 야곱에게 이 벧엘의 밤은 분명 ‘인생의 밤’이었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

본문에 등장하는 “한 곳에 이르러”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바이브카 하마콤입니다. 여기서 ‘마콤’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길 위의 공간, 즉 노숙자가 머무는 거리의 개념을 담고 있어요.
그리고 ‘바이브카’라는 표현에는 중요한 뉘앙스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장소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계획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야겠다고 선택한 장소도 아니었지요. 어머니의 손에 떠밀려, 원치 않는 길 위에 내몰린 상태에서 맞이한 밤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우연, 그리고 모름입니다.




우연과 모름 속에서

야곱은 지금 우연처럼 보이는 길 위에 서 있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실 때, 바로 이 우연과 모름의 자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을 떠올려 보세요. 그는 어디에서도 계획적으로 교회를 세운 적이 없습니다. 쫓기다가, 도망치다가, 어쩔 수 없이 머문 곳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다 쫓겨 고린도에 도착했고, 거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납니다. 그들 역시 로마에서 쫓겨난 도망자들이었습니다. 도망자 셋이 만난 그 항구 도시에서 하나님은 고린도 교회를 숨겨 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우연이고, 몰랐던 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빈 시간 속에 이미 자신의 뜻을 채워 두셨습니다.
기도는 바로 그것을 보게 하는 눈을 여는 은혜입니다.




해가 지는 시간, 새 날의 시작

본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해가 진지라”
(창세기 28장 11절)

유대인의 시간 개념에서 하루는 해가 질 때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해가 진다는 말은 끝이 아니라 새 날의 시작입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해가 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씀을 마음에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해가 졌다는 것은, 하나님 기준에서는 새로운 날이 열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어둠이 반복해서 찾아옵니다. 고난도 매번 다르게 다가옵니다. 파도가 모두 다르듯, 고난도 동일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야곱은 바로 그런 밤을 만난 것입니다.




돌을 베개 삼은 밤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세기 28장 11절)

이 장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닙니다. 유대 사회에서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공동체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어떤 마을에서도 환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맞아주지 않는 밤, 밤이슬을 맞으며 돌을 베개 삼아 잠들어야 하는 상황. 성경상 최초의 노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의 인생에도 이런 밤이 있습니다. 철저히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 말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에 공식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일방적인 개입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창세기 28장 12절)

이 당시에는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꿈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꿈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꾸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철저히 수동적인 사건입니다.

야곱이 무엇을 준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 사닥다리는 히브리어로 술람이라 불리며, 매우 좁은 일방통행의 사닥다리입니다.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통로였습니다.




언약의 하나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창세기 28장 13절)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 야곱 개인의 하나님이라고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약의 역사 속에 있는 하나님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삶은 우연처럼 보였고, 혼란스러웠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큰 흐름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약속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이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28장 15절)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돌아오게 하실 거면, 왜 떠나보내셨을까요?

야곱은 떠나야만 했습니다. 제거해야 할 것이 있었고, 고쳐야 할 성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인생의 ‘뺑뺑이’ 코스로 보내십니다. 군대의 훈련처럼, 무의미해 보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시간입니다.

야곱의 이 시간은 20년이 걸렸고, 우리에게는 평생의 싸움일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야곱은 돌아오는 길에서도 완전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얍복강의 은혜 이후에도 세겜에 눌러 앉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보다 더 질기신 분입니다. 결국 이 싸움은 누가 이길까요? 영원하신 하나님이 이기십니다.

그래서 빨리 항복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야곱의 기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세기 28장 20–22절)

야곱의 기도는 솔직히 유치합니다. 조건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철딱서니 없어 보여도, 하나님을 향한 진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재료 삼아, 자신의 주권 안에서 그것을 바꾸고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너무 멋지게, 너무 정제되게 기도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어린아이 같은 기도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붙드십니다.
그분은 고집스럽게, 끝까지 우리를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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