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33)-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속의 신비(창세기 24:1-14)

창세기 24장, 가장 긴 이야기 속
창세기 24장은 창세기 50장 전체 가운데 가장 긴 장입니다. 모두 67절로 구성되어 있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와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장은 단순한 결혼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떻게 현실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때의 상황을 먼저 정리해 보면,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 이삭의 나이는 40세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로 앞 장인 창세기 23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사라가 127세에 세상을 떠났고, 그때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뒤 3년이 지난 시점에 결혼을 맞이하게 됩니다.
꺼지지 않는 약속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스케치하듯 전체를 보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면도날로 헤집듯이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방식입니다. 창세기 24장은 이 두 가지 시선이 모두 필요한 본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상황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었고, 그의 집 모든 재산을 맡은 종도 늙었습니다. 사라는 이미 죽었습니다. 이삭은 40세가 되었지만 아직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씨’를 통해 나라를 이루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창세기 24:1–2)
아브라함도 늙었고, 종도 늙었습니다. 그러나 이 늙음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건 언약
아브라함은 늙은 종에게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맹세를 요구합니다.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으라”는 표현은 고대 근동에서 생명과 구속에 관한 언약을 맺을 때 사용하던 가장 엄숙한 의식이었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분명했습니다.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세기 24:3–4)
이는 단순한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훗날 율법에서 명확히 금지될 가나안 족속과의 혼인은 이미 이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신명기 7:3–4)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땅
종은 현실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창세기 24:5)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창세기 24:8)
핵심은 여자가 따라오느냐가 아니라, 이삭이 약속의 땅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사라의 죽음을 통해 땅을 값비싸게 사며, 이 땅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자리임을 고백했습니다.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는 분명합니다.
백성, 영토, 그리고 주권.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백성은 이삭을 통해 태어나며, 영토는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앞서 가는 길
아브라함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창세기 24:7)
종은 열 필의 낙타를 이끌고 메소포타미아 나홀의 성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시간에 종은 우물가에 섭니다.
뻔한 것도 기도하는 사람
종은 기도합니다.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시고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창세기 24:12)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태도를 배웁니다.
뻔한 것도 기도하는 사람, 이것이 진짜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 일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종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주인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이 종의 자세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입니다.
리브가의 등장, 예정된 만남
종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가 등장합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창세기 24:15)
그녀는 낯선 나그네에게 물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열 필의 낙타에게까지 물을 먹입니다. 이는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불가능한 헌신이었습니다.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창세기 24:19)
이 장면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형통,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길
종은 묵묵히 주목합니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창세기 24:21)
여기서 ‘형통’은 세상적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창세기 24:56)
이 결혼은 사람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설계였습니다.
가겠나이다, 믿음의 결단
마침내 리브가에게 질문이 주어집니다.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창세기 24:58)
리브가의 대답은 단순합니다.
“가겠나이다”
이 한마디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어떤 사람인지도 묻지 않고 약속을 따라 나서는 결단이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
마침내 저물 때, 이삭은 들에서 묵상하다가 낙타 떼를 봅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창세기 24:63)
이 만남은 단순한 결혼이 아닙니다.
이는 창세기 22장에서 시작된 약속의 성취이며,
“네 씨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창세기 22:17)
그 약속이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입니다.
시작도 하나님, 마침도 하나님
창세기 24장은 연애 지침서가 아닙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어떻게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만나게 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구속의 드라마입니다.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마침내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 엘리에셀처럼,
뻔한 것조차 기도하며
끝까지 하나님만 주목하는 삶으로
그 사랑에 순종으로 응답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