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08)-사탄의 세가지 특징 (창세기 3:8-14)


창세기 강해(08)-사탄의 세가지 특징 (창세기 3:8-14)

이 글은 송태근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 8번째
'사탄의 세가지 특징'에 대한 설교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 설교는 하단에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신자들이 사탄을 대할 때 빠지기 쉬운 두 가지 극단을 경고했습니다.

하나는 사탄을 무시하는 태도, 또 하나는 사탄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모든 것을 그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태도예요. 어느 쪽도 건강하지 않으며, 우리는 성경이 보여주는 사탄의 실체를 바르게 이해하고 균형 있게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사탄의 세 가지 속성을 중심으로, 인간 타락 이후 나타난 결과와 하나님의 구속의 길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사탄의 본질

이사야 14장 12~15절은 사탄의 속성을 드러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계명성”이라 불리는 존재가 하늘에서 떨어진 이유는,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시도 때문이었어요.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이 가지신 권위, 위치, 통치권을 넘보며 그 자리를 빼앗으려 합니다.
창세기에서 선악과 사건이 말하는 핵심도 바로 이 지점이에요. 선악을 분별하는 기능이 문제가 아니라, 그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가로채려는 시도가 죄의 본질이었기 때문이죠.

이 부분에서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사탄의 성향인 “높아지려는 마음, 자기 아집, 고집함”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망의 작은 그림자예요.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객관의 자리에 두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으로 자신을 살펴야 해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사탄의 가장 은밀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2. 사탄은 ‘거짓의 아비’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복음 8장 44절은 사탄을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라고 말합니다.
특히 사탄은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진리를 가지고 거짓말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계시록의 “백마 탄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적그리스도인 것처럼,
이단과 거짓 교사들은 성경을 단편적으로 잘라내어 자신들의 견해를 신적 권위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성경은 “제 것으로 말하나니”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늘 자기 견해, 자기 욕심, 자기 해석이 자리합니다.

이런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한 유일한 길은,
성경을 전체적이고 통전적으로 바라보며 ‘진리 안에 굳게 서는 것’이에요.
진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의 미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3. 사탄은 ‘참소하는 자’, 정죄감을 통해 무너뜨리는 존재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사탄을 밤낮으로 성도를 고발하는 자, 참소하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끊임없이 정죄합니다.

“너 그러고도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있나?”
“그 정도 믿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이런 속삭임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에 쉽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는 때로는 담대함이 필요해요.

“그래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다!”
이 확신을 잃지 않는 것이 사탄의 정죄를 이겨내는 핵심입니다.



4. 타락 이후 인류에게 나타난 변화: 수치, 두려움, 분열

창세기 3장 7절은 타락의 즉각적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


‘수치’의 시작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었어요(창 2:25).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가장 먼저 수치심이 일어났습니다.


무화과 잎의 의미

무화과 잎은 인간이 스스로 수치를 가리려는 노력, 즉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시도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59장과 64장은 이러한 인간의 행위를 더러운 옷, 짠 것으로 만든 옷이라 부르며
결코 우리를 가릴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롬 13:14).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와 수치를 온전히 덮을 수 있는 분이죠.


관계적 분열의 시작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던 아내를, 아담은 이제 “그 여자”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곧 인간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고, 가정과 공동체의 균열을 일으킵니다.


두려움과 숨음

죄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하나님을 피하게 만듭니다.
“두려워하여 숨었다”는 고백은 영적 파탄의 대표적인 모습이에요.



5. 자연계까지 무너뜨린 인간의 타락

창세기 3장은 타락이 가져온 영향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줍니다.

  • 인간 관계의 파탄
  • 심리적·영적 두려움
  • 육체적 죽음의 시작
  • 자연계의 붕괴와 오염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환경 문제, 생태계 파괴도 결국 인간의 죄성이 가져온 결과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6. 그러나 심판 안에 감춰진 ‘구원’

창세기 3장 8절의 “바람(루아흐)”“하나님의 소리(콜)”심판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파괴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은 언제나 구원을 향하는 문이에요.

구원은 “다음엔 조심해”라는 선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심판을 받으심으로 완성되는 구원입니다.



7. 새로운 ‘동산’에서 시작된 회복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요한복음 19장 41절은 놀라운 장면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곳에 동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죄가 들어와 무너진 곳이 ‘동산’이었다면,
예수님은 새로운 동산에서 장사되심으로 타락한 동산의 회복을 여셨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스스로는 다시 들어갈 수 없던 그 에덴의 문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시 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회복된 동산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분이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8. 우리의 삶: 회복의 여정을 걷는 존재

성도의 삶은 무너진 동산을 회복해가는 여정입니다.
그 삶의 중심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순종과 소통이 있어야 해요.

사도행전 4장 12절은 말합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우리는 그 이름에 의지하여,
그분의 능력에 업혀,
때로는 무거운 발걸음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순례길을 걷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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