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16)-내 언약 (창세기 9:11-13)

재창조, 언약, 그리고 인간의 실상
창세기 9장은 크게 세 토막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7절까지는, 홍수 이후 완전히 멸망한 세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온 땅 가운데 살아남은 존재는 노아의 가족과 방주에 함께 탔던 짐승들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사라졌고, 세상은 철저한 종말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새로운 명령을 주십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아담에게 주어졌던 명령과 매우 유사한,
재창조의 명령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노아를 가리켜
‘구약의 둘째 아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궁극적인 둘째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노아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중요한 그림을 담고 있는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두 번째 토막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집중해서 살펴볼 무지개 언약의
이야기이고,
세 번째 토막은 노아의 매우 수치스럽고 인간적인 실패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홍수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
노아는 포도농사를 짓고 포도주를 마십니다.
원문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음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완전히 취해 하체가 벗겨진 줄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고,
아들 함이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함은 이 일을 형들에게 알리는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라아’, 즉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수치를 희화화한 것입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옷을 들고 뒷걸음질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심판을 겪고 난 뒤, 인간은 과연 달라졌는가?
고쳐졌는가? 개선되었는가?
결론은 분명합니다. 아니요.
인간은 여전히 악하고, 더 교묘해지고, 더 질겨졌습니다.
도덕과 윤리, 문명과 교육으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성경의 현실 인식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지개 이야기를 이 자리에 배치하신 것입니다.
언약의 주어는 하나님
이제 본론인 무지개 언약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창세기 9:8–10)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의 주어입니다.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라.”
주어는 분명히 하나님입니다.
‘세우리라’는 말은 단순한 계획이나 선언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뜻은
하나님이 직접 실행하고, 진행하고, 완성하신다는 뜻입니다.
언약은 형식상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책임지시는 언약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 등장하는 언약의 본질입니다.
언약의 범위가 생물까지 포함된 이유
이 언약의 범위를 보면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창세기 9:11)
언약의 대상이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까지 포함됩니다.
이것은 짐승이 구원의 주체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비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마태복음 6:26, 28)
짐승과 자연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라면,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얼마나 더 사랑하시겠느냐는 메시지입니다.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깊고, 확고한지를 보여주는 언약입니다.
“내가 기억하리니”
무지개 언약에서 가장 독특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창세기 9:13–15)
놀랍게도 여기에는
“너희가 이 언약을 기억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기억하겠다.”
왜일까요?
홍수를 겪은 인류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습니다.
구름만 떠도, 비만 와도
또 심판이 오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억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기억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무지개는 ‘걸어두신 활’이다
무지개는 히브리어로 ‘케쉐트’,
문자적으로 ‘활’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활은 하나님의 심판과 전쟁의 무기입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출애굽기 15:3)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하박국 3:9)
하나님은 용사이시며,
때로는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때로는 우리와 싸우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싸움의 근저에는
우리를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 심판의 활을 구름 속에 걸어두십니다.
다시는 이 활로 인류를 멸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무지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성경은 무지개를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요한계시록 4:3)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에스겔 1:28)
무지개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먹구름 같은 심판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곳에서 인류의 모든 두려움과 사망의 권세를 끝내셨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보좌 주변에는
항상 무지개가 등장합니다.
먹구름 속에 걸린 하나님의 위로
사람은 홍수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더 악해졌고, 그 정점이 바벨탑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흩어짐을 두려워한 인류의 몸부림은
홍수의 트라우마가 남긴 상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와 심판을 상징하던 구름 속에
무지개를 걸어두셨습니다.
먹구름이 떠오를 때마다
두려워할 인생들을 향해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위로의 표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인생에 먹구름이 몰려올 때,
하나님이 걸어두신 그 무지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안식과 위로를 누리는 은혜가
모든 성도의 심령 가운데 풍성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