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6) 에서가 가는 길 (창세기 36:1-8)

에서의 족보가 짧게 기록된 이유
오늘 본문은 창세기 36장 1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에서, 곧 에돔의 족보가 간략하게 소개됩니다.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이 족보는 성경 전체의 분량으로 보면 매우 짧습니다. 에서의 계보는 사실상 이 한 장에서 정리되고 끝납니다. 성경 기자가 무심해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정리해야 할 인물이기 때문에, 생략하지 않고 요약해 두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하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창세기 전체에서 성경 기자가 가장 집중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합니다.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야기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요셉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분량만 보면 요셉의 이야기도 상당히 크지만, 신학적으로 보면 요셉의 서사는 야곱의 이야기의 연장선입니다.
에서의 후손들
에서의 족보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 … 아말렉 족장이니”
여기서 눈에 띄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말렉입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을 가장 집요하게 괴롭힌 족속입니다. 홍해를 건너 가나안을 향하던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공격한 민족도 아말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말렉이 누구의 혈통입니까? 에서의 혈통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낳으면 족장이 되고, 낳으면 왕이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에서는 낳으면 족장이 나오고, 낳으면 왕이 나옵니다.
야곱의 축복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야곱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삭의 축복도 야곱에게 주어졌고, 에서는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처럼 보입니다.
에서의 가문은 너무 잘됩니다. 재물도 넘치고, 권력도 있고, 세상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반면 야곱은 어떻습니까?
그의 고백대로 “험악한 세월”을 살아갑니다. 가정 안에서부터 끝없는 갈등과 상처를 겪고, 벧엘에 이르기까지 고난의 연속입니다.
오늘 본문 7절과 8절은 그 대비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에서는 재물이 너무 많아서 가나안 땅을 떠나게 됩니다.
잘 되어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잘 될수록 떠나게 되는 삶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역설을 봅니다.
에서는 잘 되면 될수록, 잘 될수록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떠나게 됩니다.
재물이 많아져서, 가축이 늘어나서, 더 이상 가나안 땅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곳이 어디입니까? 세일 산, 이방의 통치 지역입니다.
반면 야곱은 어떻습니까?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지지리 궁상처럼 살아갑니다. 문제와 시련이 끊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입니다.
곧고 잘난 나무는 다 베어 가서 궁궐의 대들보가 되고, 배를 만드는데 쓰입니다. 그러나 못난 나무는 아무도 찾지 않아서, 결국 그 자리에 남아 산을 지킵니다.
야곱과 그의 후손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떠나지 못했기 때문에, 약속의 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시편 73편의 질문
이 장면은 시편 73편의 고백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세상 사람들의 형통함을 보고 시험에 듭니다.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저렇게 잘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늘 답답하고 힘든 길을 가야 하는가.
그러나 그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야 깨닫게 됩니다.
악인의 결말과 의인의 결말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이 아니라 결말을 믿음으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분리
여기서 하나님의 미세한 손길 하나를 더 짚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분리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데라에게서 떼어 놓으셨고,
아브라함과 롯도 재물 문제로 분리시키셨습니다.
롯은 애굽의 문명을 경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더라”
신앙적 혼란이 낳은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복과 세상의 번영을 구분하지 못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을 분리하십니다.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까?
불안하고 연약한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속적 가치로 가득 찬 에서가 곁에 있으면, 야곱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떼어 놓으십니다.
고난은 머물게 하는 은혜
야곱과 그의 후손들은 떠나지 못했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 약속 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 고난이 그들의 공로였습니까? 아닙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이었고, 하나님의 인내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믿음으로 다윗은…”
모든 영광을 인간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과 함께
오늘 에서의 족보를 통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결론은 분명합니다.
에서는 세상적으로 형통했지만, 그 형통이 약속의 땅을 떠나게 했습니다.
야곱은 답답했지만, 그 답답함이 약속 안에 머물게 했습니다.
지금 내 인생이 혹시 에서의 시각으로 기울어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성공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밤이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아도,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고,
세상 길로 떠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면,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이었음을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결말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복된 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