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1)-야반도주 (창세기 31:1-16)

야반도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야반도주입니다.
야반도주란 누군가를 피해,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밤중에 몰래 떠나는 모습을 뜻하는 한자성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거의 20년에 가까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종살이 같은 시간을 끝내고, 마침내 그곳을 떠나기로 결단합니다.
이 결단은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라반 집안의 분위기가 분명히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창세기 31장 1절)
라반에게는 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장성하여 양을 칠 만큼 성장한 아들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의 말 속에는 노골적인 불평과 적대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재물은 인생의 목적이었고, 곧 그들의 영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
야곱은 단순히 소문만 들은 것이 아니라, 직접 라반의 얼굴빛을 보며 상황을 직감합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창세기 31장 2절)
이제 야곱은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31장 3절)
1절과 3절 사이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정황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기다리셨다는 듯 야곱의 인생에 개입하신 것입니다.
피할 길을 여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에도 이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떠밀리듯 어떤 자리를 떠나야 하는 순간들입니다. 오해를 뒤집어쓴 채, 혹은 이해받지 못한 채 보직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질 때의 비애감은 겪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순간마다 피할 길을 여십니다.
그 피할 길은 다른 선택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길입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며,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임기응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우리 인생을 이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언약 안에서 일하십니다.
20년 전의 약속
야곱이 처음 집을 떠나 돌베개를 베고 노숙하던 그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28장 15절)
야곱은 잊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한 것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무심한 기도 한 마디조차 잊지 않으십니다. 그 성실함은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편애적 사랑에서 나오는 성실함입니다.
폭발하는 지난 세월
야곱은 라헬과 레아를 양 떼가 있는 들로 부릅니다.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창세기 31장 4절)
라헬의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 것은 그가 라헬을 더 사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곱은 그들에게 지난 세월의 억울함을 토해냅니다.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창세기 31장 7절)
이 ‘열 번’은 문자적 횟수가 아니라, 수도 없이 속였다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속임수에 능한 야곱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장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낚아채셨다
야곱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세기 31장 9절)
여기서 ‘빼앗다’는 표현은 맹수가 물고 가는 것을 입에서 낚아채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라반이 빼앗으려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서 야곱의 몫을 되찾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이 과정을 통해 서서히 하나님을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거룩
거룩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구속받은 순간부터 시작되는 긴 순례의 여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꺼번에 썰어내지 않으시고, 매일 조금씩 깎아 가십니다. 야곱 같은 고집 센 인생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 고쳐진 다음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엉망진창인 상태에서도 하나님은 고쳐가며 사용하십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습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창세기 31장 13절)
이것은 20년 전, 아무것도 모른 채 하나님의 임재를 처음 경험했던 바로 그 자리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인간의 현실과 하나님의 계획
야곱의 삶에는 분명 인간적인 갈등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봇을 조정하듯 우리 인생을 몰아가지 않으시고, 시간과 공간, 감정과 사건 속에서 일하십니다.
라반도 필요하다
마침내 라헬과 레아도 야곱의 결정에 동의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세기 31장 16절)
시간이 지나 거룩의 용량이 커지면,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라반도 필요했구나.”
로마서 8장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이 ‘모든 것’에는 원치 않았던 시간, 고통스러운 관계, 눈물의 순간들까지 포함됩니다.
날개가 돋는 시간까지
다 안 될 것처럼 보이는 날이 옵니다.
그때쯤이면, 하나님께서 날개를 돋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라반 같은 존재들, 눈물겨운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감당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