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2)-동행 (창세기 5:21-24)

죽음의 족보 한가운데 등장한 한 사람, 에녹
오늘은 창세기 5장에 들어서면서, 5장 전체 속에서 에녹이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고, 더 좁게는 에녹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창세기 5장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면,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죽었더라”라는 표현입니다. 몇 절만 살펴보겠습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5장 4–5절)
또 이어서,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5장 6–8절)
10절, 14절, 17절, 20절을 계속 읽어도 동일합니다.
살고, 그리고 죽었더라.
이것이 인류의 족보이며, 인류 역사의 흔들 수 없는 일반성입니다.
사람은 살다가 결국 죽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족보 한가운데, 전혀 다른 기록을 가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녹입니다.
“죽었더라”가 아닌 “동행하더니”
창세기 5장 21절부터 보겠습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창세기 5장 21–23절)
그리고 이어지는 24절은 더욱 놀랍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장 24절)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에녹에게는 “죽었더라”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여러 해석이 있어 왔습니다.
실제로 죽었으나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인물을 단순한 수사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이 결론은 신약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부분은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기록이 짧지만 의미는 분명한 인생
에녹의 인생을 추적하려고 하면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단 두세 줄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에녹을 아담의 칠대 손, 일곱 번째
인물로 배치합니다.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중요한 사명과 메시지를 담을 때 자주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에녹의 인생에는 어떤 전환점이 있었을까요?
65세, 인생의 방향이 바뀌다
창세기 5장 21절을 다시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에녹의 인생 전체는 365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행한 기간은
므두셀라를 낳은 이후 300년입니다.
즉, 계산해 보면 분명해집니다.
65세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65세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해에 단 한 가지 사건만을 기록합니다.
바로 아들의 출생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므두셀라입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 속 메시지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의미는 매우 강렬합니다.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나른한 일상을 살아가던 에녹에게 이 이름은 청천벽력과 같았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들의 이름을 통해 매일, 매순간 상기시키는 삶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생으로 들어섭니다.
‘동행’의 히브리적 의미
우리는 흔히 ‘동행’을
“함께 걷는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물론 그 의미도 맞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뉘앙스는 조금 더 강합니다.
‘동행’이란,
하나님이 앞서 가시고, 사람을 이끄시며 몰아가시는 상태입니다.
주도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에녹의 동행은 에녹이 결단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시작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에녹은 무엇을 하며 동행했는가
구체적으로 에녹이 무엇을 했는지는 창세기에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책들을 통해 그 삶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유다서의 증언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다서 1장 14–15절)
에녹은 경건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팔수, 하나님의
메가폰이었습니다.
히브리서가 밝히는 에녹의 결말
히브리서는 에녹의 삶과 결말을 분명히 정리해 줍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11장 5절)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장 6절)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삶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는 것에만 인생의 목적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 행위 자체가 죄가 아니라, 그것이 전부가 된 삶이
문제였습니다.
에녹은 달랐습니다.
그의 시선은 늘 위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 전체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삶이었습니다.
므두셀라의 죽음과 홍수의 정확한 일치
므두셀라는 몇 세까지 살았습니까?
969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그가 죽은 해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입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창세기 7장 11절)
므두셀라가 죽자, 심판이 임했습니다.
1년의 오차도 없습니다.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마음
므두셀라가 가장 오래 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안에는
한 영혼이라도 더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심판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로 살아가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에녹처럼 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에녹이 되라고 말합니다.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말씀을 기준으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판이 되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움직이는 기준은 교회의 비전도, 사람의 계획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둘째, 말씀을 분별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싸움은 결국
말씀을 어떻게 붙들고 있는가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셋째, 주님 오시는 날까지 등대처럼 서야 합니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시대를 깨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길 끝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