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7) 꿈의 충돌 (창세기 37:1-11)

꿈의 충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이 시간, 이 시대의 나에게 맡기신 위치적 역할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인
창세기 37장을 통해 이 질문을 다시 붙들어 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는다면, 이렇게 부르고 싶어요.
“꿈의 충돌”입니다.
거류와 거주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두 개 등장해요.
‘거류’와 ‘거주’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그 땅에 거류했습니다.
이 말은 곧 나그네로 머물렀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야곱은 그 땅에 거주합니다.
이는 정착, 곧 원주민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입니다.
문자 그대로만 읽어도, 한 시대가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제는 땅과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예요.
하나님의 계획의 전체 그림
집을 지어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전문가가 설계도면을 들고, 이해되지 않는 위치에 기둥을 세우고 벽을 놓을 때,
옆에서 보면 늘 의문이 생깁니다.
‘왜 저걸 저기에 두지?’
하지만 설계자는 이미 완성된 그림을 보고 움직이고 있어요.
하나님의 역사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의 부분만 보지만,
하나님은 완성된 전체를 향해 일하고 계세요.
그래서 혼란이 생깁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조급함이 생기죠.
이 혼란을 거두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예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보는 훈련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일,
그분의 뜻과 방향을 아는 일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인생을 살며 뒤늦게 깨닫습니다.
“아, 그때 그 일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특권이 있어요.
이미 완성된 말씀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완성된 설계도입니다.
성령의 조명 아래, 우리는 그 설계도를 지금도 펼쳐볼 수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꿈을 주지 않으세요.
말씀을 가진 자에게 꿈을 주십니다.
제자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졌습니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을 풀어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부활이 십자가와 연결되자,
그제서야 지각의 지진이 일어난 겁니다.
야곱의 족보, 시작은 요셉
본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누구로 시작하나요?
요셉입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사실상 야곱의 이야기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인생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스라엘로 빚어지는 여정이에요.
17세 요셉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
17번째 글자는 ‘페(פ)’입니다.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고,
의미는 ‘말하다’, ‘전하다’입니다.
요셉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존재.
요셉의 험담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이 표현은 단순한 보고가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험담,
자기 감정을 실어 형제들의 행동을 일러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 대목의 요셉은 얄밉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미화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편애와 채색옷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여…”
야곱의 편애는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진실이 하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사건 자체가
이미 공평하지 않아요.
사랑은 수학 공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복합적이며, 설명 불가능합니다.
첫 번째 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요셉은 꿈의 의미를 몰랐어요.
그저 본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형제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영적으로 깨어나지 않은 공동체는
하나님의 계획을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두 번째 꿈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꿈이 반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확정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요셉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미 결정하셨어요.
간직해 두었더라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야곱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믿음의 전환점이에요.
보이지 않아도,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마음에 담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이야기
요셉은 은전 20에 팔립니다.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요셉은 몰랐어요.
그러나 그의 인생은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창세기는 결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야곱을 이스라엘로,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이야기.
잠잠히 사랑하심
하박국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요.
우리 인생이 열두 번쯤 뒤집혀도,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사랑을 철회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손을 놓아도,
그분은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맺는 말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이 시대 속에서의 우리의 인생은
야곱의 톨레돗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결국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