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04)-안식으로 (창세기 2:1~3)


창세기 강해 04, 안식으로 (창세기 2:1~3)

이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 4번째
"안식으로"라는 설교를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영상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안식일보다 ‘안식’에 초점

성경에서 “안식일”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에서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등장합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안식”이라는 개념만 등장하지요. 즉, 형식으로서의 ‘날’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2장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는 짧은 문장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인류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담긴 강력한 선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물"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히브리어 차바(צבא, tseva)—‘군대’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아래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이 단어가 묵직하게 드러냅니다.



왜 ‘군대’라는 단어를 썼을까?

군대는 ‘통치, 명령, 복종’이라는 명확한 구조를 갖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의도하신 질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건강하고 안정된 존재가 되는 순간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순종의 자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성경에서도 이 표현은 반복됩니다.

  • 출애굽기: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냈다.”
  • 여호수아 5장: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왔느니라.”

즉,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군대이며, 그분의 명령과 통치 아래 있을 때 존재의 목적을 회복합니다.



혼란은 언제 시작되는가

우리 삶의 문제는 대부분 순서가 뒤틀린 데서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을 뒤로 미루고, 덜 중요한 것을 앞세우고,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서 있기 때문에 불안이 생기고 삶이 흔들립니다.

창세기가 말하듯,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는 선언 속에 인간 존재의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지가 이미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일을 마치셨는가?

창세기 2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여섯째 날까지 일하시고 일곱째 날 쉬셨다”고 알고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부 번역본은 여섯째 날에 일을 마친 것으로 번역하지만, 그것은 번역상의 조정이지 원문과는 다릅니다.
개역개정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했고, 그래서 일곱째 날 ‘마침’이 기록된 것입니다.

이것은 혼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속에 담긴 종말론적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하신’ 이유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문제 삼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즉,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안식을 이루는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회복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그것이 하나님의 안식이며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한다”는 말은 곧, 창조의 일곱째 날부터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을 보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더 큰 일’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의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창세기 2장의 “마치셨다”와 연결되며, 창조의 안식이 십자가에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셨다”의 진짜 의미

창세기 2장 3절은 말합니다.

“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멈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생명을 살리고 회복하는 일을 완성하셨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안식은 행위의 중단이 아니라, 생명 회복의 완성입니다.

  • 복되게 하셨다(바라크):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분을 기뻐하는 상태
  • 거룩하게 하셨다(카다쉬): 하나님의 성소가 되는 분리된 상태

그러므로 일곱째 날은 생명이 회복되는 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지는 날입니다.



왜 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가 없을까?

창세기 1장에서는 매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에는 이 표현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안식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영원한 쉼은 시간이 흘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생명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안식의 결론

요한계시록 21장은 창세기의 안식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줍니다.

  • 처음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며
  •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 눈물과 고통이 없는 완전한 안식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창세기에서 시작된 ‘완성’의 약속은 계시록에서 성취됩니다.
안식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 창조의 완성입니다.



안식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

인간은 흔들리고, 세상은 폭력과 혼란으로 가득하고, 우리의 마음도 불안합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은 안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안식은 단 한 가지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신다.”

내가 앞서지 않고, 내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쉬지 않고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진짜 안식이 시작됩니다.

제자들이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장면처럼,
우리의 수고는 결국 빈 그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시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열립니다.



예수로 충분한가?

안식의 주제는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예수로 충분한가?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실 때에만 진정한 쉼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불안해서, 부족해서,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서 앞서 나가려 할 때 삶은 더 어지럽혀지고 평안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일하신다”는 웅장한 고백이 가슴 한복판에서 살아날 때,
참된 안식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기 시작합니다.

이 진리가 여러분의 평생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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