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21)-선택의 기준 (창세기 13:1-13)


창세기강해(21)-선택의 기준 (창세기 13:1-13)


목자들의 다툼에서 시작된 이야기

오늘 말씀의 출발점은 롯의 가축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들 사이의 다툼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갈등이지만, 이 사건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기근이 들자 아무런 고민이나 갈등 없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기근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곳에서 그는 아내 사라로 인해 큰 위기를 맞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손의 문제마저 중단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실제 모습은 이처럼 연약했습니다.



믿음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참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을 이끄십니다. 사람이 어머니 태에서 태어나 시간과 공간을 거치며 자라듯이, 믿음 역시 자라나는 과정을 거칩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사무엘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그 과정 속에서 믿음은 조금씩 형성됩니다. 아브라함 역시 처음부터 믿음의 조상이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라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이유는 믿음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은혜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

성경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아브라함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치 눈금이 생기듯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차적 관심은 결과나 성취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망가뜨려 가면서까지 일을 이루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최우선 관심은 언제나 사람이 자라고 성숙해지는 것에 있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아브라함의 가축과 롯의 가축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당시 재산의 기준은 소와 양 같은 가축이었고, 가축은 계속 번식하지만 땅은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먹을 땅이 부족해졌고, 목자들 사이의 다툼이 반복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창세기 13장 6절)

게다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더 큰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아브라함은 내다봅니다. 그래서 그는 롯에게 분가를 제안하며, 모든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에게 먼저 양보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세기 13장 9절)


 

눈으로 판단한 복

롯은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세기 13장 10절)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았다’는 표현은 고대 세계에서 최고의 환경을 의미합니다. 롯은 이 환경을 하나님의 복으로 이해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 땅을 택합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세기 13장 11절)

하지만 롯은 소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 장막을 칩니다.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창세기 13장 12절)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창세기 13장 13절)

롯은 알고도 갔습니다. 기준은 하나였습니다. 이익이 되느냐, 물질이 되느냐였습니다.



‘근처’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인생

창세기 14장에 이르면 롯은 더 이상 근처에 있지 않습니다.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창세기 14장 12절)

그리고 시간이 흘러 창세기 19장에서는 이렇게 묘사됩니다.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창세기 19장 1절)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재판관이 되었거나 도시의 유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롯은 인간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성공의 네 가지 질문

첫째, 롯 개인은 행복했는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베드로후서 2장 7절)
“날마다 그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베드로후서 2장 8절)

롯은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심령은 매일 상해 갔습니다.


둘째, 그의 가족은 행복했는가

“롯이 나가서 그의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되 …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세기 19장 14절)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하나님의 말씀이 가볍게 여겨졌습니다.


셋째, 그 도시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는가

아브라함의 중보로 의인 열 명을 찾았지만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도시 안에 남겨진 믿음의 영향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넷째, 인생의 마지막에 무엇을 남겼는가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 모압의 조상이요 …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창세기 19장 36–38절)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혔던 족속의 씨앗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들게 하신 눈

반면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창세기 13장 14절)

롯은 스스로 눈을 들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눈을 들게 하셨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두 사람의 인생을 갈랐습니다.



누가 눈을 드는가

결국 질문은 하나입니다.
내가 눈을 들 것인가, 하나님이 눈을 들게 하실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과 예측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십자가의 방법, 곧 내 꿈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리에서 완성됩니다.

“어떤 인생의 시간도 예수로 채워지지 않고는 하나님은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두지 않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알아가는 기도의 밤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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