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56) 인생의 세가지 공식 (창세기 45:1-15)


창세기 강해(56) 인생의 세가지 공식 (창세기 45:1-15)

이 글은 송태근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
56번째 인생의 세가지 공식이란 
설교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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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먼저 떠올려 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낮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이 붉어지기까지는 수많은 밤과 계절이 필요합니다. 태풍도 지나가고, 무서리도 내려야 합니다.
요셉의 인생을 바라보면 이 시의 한 줄 한 줄이 그대로 겹쳐 보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따라오면서 우리는 분명한 두 가지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무서운 절제와 침묵,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때에 터져 나오는 반전입니다.



절제로 견딘 요셉

성경 어디에도 요셉이 감정에 휘둘리거나 절제를 잃고 무너졌다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배신, 억울함, 치욕, 외로움 속에서도 요셉은 묵묵히 침묵하며 모든 비바람을 맞아 냅니다.

그의 주변에는 늘 천둥이 쳤고, 폭풍이 불었고, 무서리 내리는 밤과 땡볕 같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을 말이 아닌 절제와 침묵으로 견뎌 냅니다.



세 번의 울음

요셉은 세 번 울지만, 그 울음은 모두 절제된 울음입니다.

첫 번째 울음 – 형들 앞에서 숨긴 눈물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창 42:24)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깁니다.
울고 돌아와 다시 냉정하게 행동합니다.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선택한 것입니다.


두 번째 울음 – 사랑 때문에 흘린 눈물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창 43:30–31)

베냐민을 향한 사랑이 터져 나왔지만, 요셉은 다시 울음을 씻고 나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세 번째 울음 – 억제할 수 없었던 통곡

드디어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더 이상 참지 않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창 45:1)

애굽 사람들을 모두 물리칩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형제들뿐입니다.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창 45:2)

이 울음은 분노의 울음도, 억울함의 울음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해소된 감사와 감격의 눈물입니다.



요셉의 울음

요셉의 울음이 바로의 궁궐까지 들렸다는 말은 단순한 소리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과 용서의 사건이 애굽 제국의 심장부까지 알려졌다는 뜻입니다.

이는 장차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이방의 땅까지 전해질 것을 암시합니다.



나는 요셉이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창 45:3)

형들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요셉은 이어서 형들을 향해 결정적인 고백을 합니다.

“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요셉의 세 가지 위대한 고백

요셉의 용서와 화해는 인격이나 윤리 수준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세 가지 고백을 통해 복음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모든 사건의 주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형들이 아니라, 상황이 아니라,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둘째,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생명 구원에 초점이 있습니다.
정치, 제국, 권력보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생명입니다.

셋째, “먼저 보내셨다”

요셉은 비로소 자신이 팔려 온 사람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리에서

보냄을 받은 인식을 잃으면 인생은 늘 억울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시각에 눈이 열리면
미움이 사라지고, 원망이 녹아내립니다.

요셉은 훗날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 50:19)

이 말은 철저한 신앙 고백입니다.
심판과 보복의 자리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합니다.



용서와 화해

오늘 세상은 분노와 가시와 담으로 가득합니다.
교회도, 세상도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요셉의 울음입니다.
원수와 피해자, 가해자와 상처 입은 자가 만나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그 복음의 눈물입니다.



익어 가는 고백

대추 한 알 안에
태풍이 있었고
무서리가 있었고
달빛이 있었듯이

우리의 신앙도 이 세 가지 고백 위에 익어 가야 합니다.

  •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 생명을 구원하시려 하셨습니다
  • 나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이 고백 위에 서는 인생은
결국 반드시 붉게 익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열매가 됩니다.

이 밤, 그 고백이 우리 안에 깊이 쌓여 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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