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32)-아내의 죽음(창세기 23:1-20)

아내의 죽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아내의 죽음이에요.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무거워지죠.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가장 큰 충격 가운데 하나는, 인생을 함께 걸어온 배우자와의 이별이라고들 말해요. 그만큼 부부의 이별은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아픔을 남깁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살아온 아내 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게 돼요.
아브라함은 75세에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사라는 65세에 남편을 따라 그 땅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만 60년이 넘는 세월을 살다가, 사라는 1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아도, 여인의 정확한 수명을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한 경우는 이 사라가 유일해요. 이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믿음의 조상의 아내로서, 그리고 열국의 어미로 불린 이 여인의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사라의 생애가 기록된 이유
사라는 평생 완벽한 삶을 살았던 인물은 아니에요. 인간적인 연약함도 있었고, 실수도 했고, 넘어지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미”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녀를 통해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났으며, 그 계보를 따라 메시아가 오게 되죠. 그래서 성경 기자는 이 여인의 인생을 시작과 끝까지 또렷하게 기록해요. 우리는 이 아내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단순한 슬픔을 넘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묵상하게 됩니다.
헤브론의 의미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창세기 23장 1절)
사라가 죽은 곳은 헤브론이에요. 이 헤브론은 훗날 다윗이 왕으로 통치하던 이스라엘의 옛 수도가 되는 매우 중요한 땅이죠.
성경은 이곳을 또 다른 이름으로 기럇아르바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르바의 도시”라는 뜻이에요. 아르바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아낙 자손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당시 이 지역은 강력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땅이었습니다.
그런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생을 마감합니다. 이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섭리 안에 놓여 있어요.
그리고 ‘일어나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창세기 23장 2절)
아브라함은 아내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해요. 이것은 형식적인 애곡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아내를 향한 깊은 사랑과 애틋함이 담긴 슬픔이에요.
그리고 성경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창세기 23장 3절)
여기서 “일어나다”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해요. 히브리어 원어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몸을 일으킨다는 뜻을 넘어, 결단하다, 확정하다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어요.
아브라함은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아내의 죽음 앞에서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립니다.
나는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창세기 23장 4절)
아브라함은 헷 족속 앞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해요. 이미 가나안 땅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여전히 나그네요 거류민이라고 고백합니다.
‘나그네’는 이방인을 뜻하고, ‘거류자’는 법적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해요.
즉,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아무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거예요.
이 고백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이 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며, 자신은 약속을 따라 잠시 머무는 존재라는 신앙의 선언이에요.
매장지를 요청하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사라를 장사할 매장지를 요청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매장을 했고, 팔레스타인의 더운 기후 속에서는 신속한 매장이 필요했어요.
뜻밖에도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존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창세기 23장 6절)
나그네로 들어온 이방인이었지만,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신뢰받는 인물로 살아왔어요.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죠.
은 사백 세겔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소유한 에브론에게 값을 치르고 땅을 사겠다고 합니다. 에브론은 여러 차례 “그냥 주겠다”고 말하지만, 결국 은 사백 세겔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제시해요.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창세기 23장 16절)
이 금액은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과도한 액수였어요. 사실상 바가지를 쓴 거래였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거래는 단순한 부동산 매매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아브라함은 이 땅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확정’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일어나다’와 ‘확정되다’의 연결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창세기 23장 18절)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확정되다’예요. 이 단어는 앞서 말한 ‘일어나다’와 같은 히브리어에서 나왔어요.
즉, 아브라함이 시신 앞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다시 일어서 결단했다는 뜻이에요.
아내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현실 속에서 붙잡는 계기가 됩니다.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방식
사라는 아들 이삭의 결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요.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 아쉬운, 미완의 인생처럼 보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늘 이렇게 일하세요. 완제품을 한 번에 주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지를 남기시고, 함께 만들어 가기를 원하세요.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서, 약속의 땅을 확정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로 이어주는 선택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향한 초대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을 붙잡고 묵묵히 걸어갔어요.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확정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 세상 한복판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한 걸음씩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이 밤, 아브라함의 선택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조금씩 드러내는 순종의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