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4)-세겜의 잔혹사 (창세기 34:1-8)

창세기 강해(44)-세겜의 잔혹사 (창세기 34:1-8)

이 글은 송태근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
44번째, 세겜의 잔혹사라는 제목으로
전하신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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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등장하지 않는 34장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창세기 34장에는 매우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이 장은, 그 자체로 이미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 끔찍하고 참혹한 사건의 한복판에서, 성경은 왜 하나님을 침묵시키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침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레아가 낳은 딸 디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창 34:1)

굳이 “야곱의 딸”이라고 하지 않고, “레아가 낳은 딸”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우연이 아닙니다. 레아는 야곱이 사랑해서 선택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속임으로 얻게 된, 말하자면 ‘덤으로 얻어진 아내’였습니다.

디나는 그 레아에게서 태어난 딸입니다. 이 사실은 이후 야곱의 태도와 침묵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보러 나갔다

“보러 나갔다”는 표현은 단순한 산책이나 구경이 아닙니다.
세겜이라는 도성, 그 화려한 문화와 세속적인 매력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담긴 행동이었습니다.

문제는 야곱이 이미 이 땅에 머무를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야곱이… 세겜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 밭을 사며” (창 33:18-19)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짐을 지고 떠나야 할 곳’이라는 뜻을 가진 세겜에 장막을 치고, 땅을 사고, 눌러앉을 준비를 합니다.



세겜의 범죄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세겜이…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창 34:2)

성폭력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파괴적인 죄입니다.
한 인격을, 한 인생을 무너뜨리는 폭력입니다.

이 사건 이후, 이 장 전체는 디나의 고통을 중심에 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침묵하는 두 존재

이 장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침묵하십니다.
둘째, 디나는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디나는 말하지 못하는 존재, 당하는 존재, 지워진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의 고통, 감정, 의사는 철저히 삭제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디나들은 너무 많습니다.
종교, 권력, 공동체의 이름으로 침묵당한 수많은 디나들 말입니다.



침묵하는 야곱

아이러니하게도 세겜은 책임을 지려 합니다.

“그 마음이 깊이 디나에게 연연하며…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창 34:3–4)

물론 그의 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반면 야곱은 어떻습니까?

“야곱이… 자기 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창 34:5)

딸이 능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야곱은 침묵합니다.
분노도, 항의도, 행동도 없습니다.

이 침묵은 비겁한 침묵입니다.



왜곡된 중심성

이 장에서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누이를 더럽혔음이라” (창 34:13, 27)

문제는 이 ‘더럽힘’이 디나의 고통이 아니라,
공동체의 명예 손상, 남성들의 수치로만 이해된다는 점입니다.

디나는 여전히 중심이 아닙니다.



종교의 광기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명분 삼아 속입니다.

“우리는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창 34:14)

가장 거룩한 언약의 표징을 복수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 지점에서 종교는 광기가 됩니다.

역사 속의 십자군, 마녀사냥이 바로 이런 구조였습니다.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모든 남자를 죽이고” (창 34:25)

과도한 응징, 지나친 보복, 통제되지 않은 분노가 성을 피로 물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십니다.



'나'뿐인 야곱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창 34:30)

야곱의 말 속에는 디나가 없습니다.
오직 ‘나’, ‘내 집’, ‘내 생존’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끔찍한 사건을 통해 야곱을 결국 벧엘로 끌어올리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사람이 더 이상 눌러앉고 싶지 않도록
모든 정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저주가 은총으로

시므온과 레위는 저주를 받지만, 훗날 레위는 하나님께 헌신된 지파가 됩니다.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복을 내리시리라” (출 32:29)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은총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침묵하는 야곱입니까?
범죄한 세겜입니까?
계산하는 하몰입니까?
과도한 응징의 시므온과 레위입니까?
아니면 말하지 못한 디나입니까?

창세기 34장은 질문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로 향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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