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한복음 강해 39. 예수님이 기도하시다

1.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요한복음 17장은 매우 특별한 장입니다. 흔히 ‘중보기도의 장’ 혹은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기도가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된 유일한 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 그리고 제자들을 위한 기도, 마지막으로 장차 복음을 통해 세워질 공동체, 곧 오늘날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신 첫 번째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버킷 리스트
오래된 영화 「버킷 리스트」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두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 실행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버킷 리스트’라는 말은 원래 교수형 집행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죽음을 앞둔 상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역시 그 마지막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영적 버킷 리스트’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이 하신 일은 다름 아닌 ‘기도’였습니다.
3. 중보기도의 시작은 ‘자기 자신’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요 17:1)
우리는 보통 중보기도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가장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 장면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립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위한 기도를 이기적인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중보기도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내 안이 무너져 있는데 누군가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이 지치고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데 다른 사람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올바른 순서입니다.
4. “때가 이르렀사오니”라는 완료형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요 17:1)
여기서 ‘때’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헬라어 ‘호라’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이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에게는 시간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때’ 안에는 십자가의 죽음뿐 아니라, 부활과 승천, 그리고 구원의 완성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모든 과정을 ‘완성된 사건’으로 바라보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5.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요 17:1)
이 말씀은 얼핏 보면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영광’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속적인 성공이나 높아짐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 ‘영광’(독사)은 언제나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기도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하는 ‘영광’입니다.
6.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은 ‘단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의 고통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고통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이었습니다. 죄를 대신 짊어지시면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그 순간이 예수님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7. 아들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1)
예수님이 십자가를 감당하시면, 그 영광은 곧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구속의 사건은 ‘사랑’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은 그 사랑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 자리입니다.
8.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예수님에게 힘이 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의 본질이었습니다.
9.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 4:35)
여기서 ‘희다’는 표현은 실제로 곡식의 색깔이 아니라, 추수하는 사람들의 흰 옷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즉 이미 수확할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귀한 신분이나 왕족 외에 옷에 염색을 해서 입는 경우가 없었음. 모두 염색되지 않은 흰색을 입음.
이 말씀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이미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명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10.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납득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서 있는 태도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행동입니다.
필요를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11.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큰 영광
예수님조차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응답 여부를 떠나,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17장은 단순한 기도의 기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순종의 본질, 그리고 영광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잃어버린 기도의 자리가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