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38. 담대함을 넘어 이김의 자리로! (요한복음 16:25-33)

1.요한복음 강해 38. 담대함을 넘어 이김의 자리로!

이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
38번째, 담대함을 넘어 이김의 자리로라는
설교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모두보기


1. ‘파로이미야’의 의미

요한복음 16장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에 빠진 제자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여기서 ‘이것’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대표적으로 다음 두 구절을 통해 그 범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요 16:16)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요 16:21)

이 말씀들은 분명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지만,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모호하게 들렸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비유’라는 표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라볼래(비유)’가 아니라, ‘파로이미야’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격언’이나 ‘잠언’과 같은 형식이지만, 듣는 이에게는 모호하게 느껴지는 표현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이 일부러 모호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이해 수준에서는 명확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2. 때가 이르면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요 16:25)

여기서 ‘때’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이어지는 구속사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반드시 이어지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오심입니다.

즉, “때가 이르면”이라는 말씀은 곧 “성령이 오시면”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지금까지 모호하게 들렸던 말씀들이 분명하게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생명으로 깨달아지는 순간이 오는 것입니다.



3. 직접 구하는 기도

예수님은 놀라운 변화를 선언하십니다.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요 16:26)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요 16:27)

이 말씀은 신앙의 관계가 완전히 새롭게 설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중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7:25)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이 관계의 기초는 완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믿음, 흔들리는 사랑조차도 하나님은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완성된 것으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 담겨 있습니다.



4.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요 16:28)

이 짧은 구절 안에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역,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까지 모든 구속의 내용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반응합니다.

"이제야 밝히 말씀하시니 우리가 믿사옵니다." (요 16:29-30)


 

5. 성급한 확신

제자들의 고백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반응하십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 16:31)

이 질문은 칭찬이 아니라, 안타까움이 담긴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말씀에서 제자들의 미래를 예고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온다." (요 16:32)

여기서 ‘흩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따라 흩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게 됩니다.

이 모습은 이미 예언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사 53:6)


 

6.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신다

모든 제자가 떠나는 순간에도, 단 한 분은 떠나지 않으십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요 16:32)

이 말씀은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떠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7.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

요한복음 16장의 마지막은 평안에 대한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요 16:33)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평안과 다릅니다. 세상은 문제의 부재를 평안이라 말하지만, 예수님은 환란 속에서도 누리는 평안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요 16:33)

여기서 “이겼노라”는 완료형입니다. 이미 승리는 확정되었고, 그 승리는 영원히 지속됩니다.



8. 십자가의 시선으로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탐욕과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시선’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승리의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세상을 해석하는 새로운 눈을 얻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보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신앙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해석의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습니다.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분이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