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27.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의 현재성 (요한복음 11:1-7)

요한복음 강해 27.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의 현재성

이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
27번째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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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의 방향은 십자가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11장,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은 흔히 ‘표적의 책’이라고 불릴 만큼 여러 표적들이 등장하는데, 이 표적들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십자가를 향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표적은 단순한 이적이나 기적과는 다릅니다. 기적이 능력의 나타남이라면, 표적은 그 능력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지판’입니다. 그 방향은 언제나 십자가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총 7개의 표적이 등장하는데, 물이 포도주로 변한 가나의 혼인잔치가 첫 번째 표적이라면, 오늘 나사로의 부활은 마지막 일곱 번째 표적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 전반부가 마무리되며, 본격적인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요 11:1)

나사로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병든 상태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 가정은 특별히 강조됩니다.

“이 마리아는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요 11:2-3)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 가정은 예수님께 매우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이어집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요 11:4)

예수님은 이 병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 11:5-6)

사랑하셨기 때문에 곧장 달려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틀을 더 머무르셨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입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지체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표가 아니라, 자신의 완전한 계획에 따라 일하십니다. 그 과정은 때로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그 결말에서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죽음을 향한 두 방향

“유대로 다시 가자” (요 11:7)

제자들은 그곳이 위험하다고 만류합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요 11:8)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선택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십자가를 향한 결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대비가 나타납니다. 한쪽에서는 나사로가 죽어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예수님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두 흐름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내가 죽어야 너희가 산다”는 구속의 원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잠들었도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 11:11)

제자들은 이를 단순한 잠으로 오해합니다.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요 11:12)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요 11:14)

예수님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잠과 같은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1:15)

이미 제자들도, 마르다와 마리아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제한된 믿음이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 11:21)

이 믿음은 ‘그때’, ‘그 자리’라는 조건에 묶여 있었습니다. 또한 마르다는 부활을 믿었지만 그것은 미래의 사건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 11:24)

문제는 부활이 현재의 삶에는 아무 능력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활의 현재성

요한복음이 강조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부활은 단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40)

하나님의 영광은 내가 원하는 방식의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식대로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게 하는 열쇠가 바로 ‘믿음’입니다.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5)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한 애도의 눈물이 아닙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요 11:33)

이 눈물은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절망에 대한 깊은 공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분입니다.

이 공감에서 구원이 시작됩니다. 이 눈물에서 생명이 시작됩니다.



죽음의 현실과 생명의 선언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39)

죽음은 현실입니다. 냄새가 나는, 숨길 수 없는 절망입니다. 이 나사로의 상태는 곧 인류 전체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앞에서 선언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요 11:39)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1)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부활의 권능

사도 바울은 이 부활을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권능’으로 표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빌 3:10)

이 부활의 권능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삶을 완전히 뒤집는 힘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길 뿐더러… 배설물로 여김은…” (빌 3:7-8)

바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

나사로 사건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죽음을 깨뜨리기 위해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부활은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그 부활의 권능이 삶 속에서 실제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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