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25.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복음 10:1-7)

요한복음 강해 25. 나는 양의 문이라

이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
25번째, 나는 양의 문이라라는 설교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모두보기


양과 목자의 비유

요한복음 10장은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양과 목자’의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고(16절), 이어서 그 의미를 자세히 풀어 설명해 주시는 해설(7-18절)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단순히 목자와 양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깊이 담겨 있습니다.



문으로 들어오는 목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예수님은 먼저 ‘문으로 들어오는 자’‘담을 넘는 자’를 구분하십니다. 문으로 들어오는 이는 정당한 목자이며, 담을 넘는 자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참된 목자는 결코 몰래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양을 알고, 양도 그를 알기 때문에 당당하게 ‘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참된 목자이심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의 차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읽을 때 ‘삯꾼’을 부정적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당시 문화적 배경을 보면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양을 몇 마리씩 키웠지만, 전문 목자를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공동으로 ‘공동 우리’를 만들고, 함께 돈을 모아 목자를 고용했습니다. 이 목자가 바로 ‘삯꾼’입니다.

삯꾼은 계약된 사람으로서 일정한 책임을 다하지만, 생명을 걸고 양을 지킬 의무까지는 없었습니다. 맹수가 여러 마리 나타나면 도망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의 핵심은 삯꾼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짜 강조점은 ‘선한 목자’입니다.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과연 누가 짐승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수 있을까요?

양은 연약하고, 어리석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루어질 실제 사건을 가리킵니다. 죄로 인해 길을 잃은 인간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희생 제물이 되신 사건, 바로 그 사랑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목자이면서 동시에 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목자’라고 하셨는데, 동시에 ‘문’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이 두 개념은 서로 다른 역할처럼 보이지만, 당시 목자의 실제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밤이 되면 목자는 양의 우리 입구에서 지팡이를 들고 직접 자신이 문이 되어 양을 지킵니다.

즉, 예수님은

  • 양을 인도하는 목자이시며
  • 동시에 양을 보호하는 문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안전한 우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과 그리스도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르고…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출애굽기의 유월절 사건은 요한복음 10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문에 발려진 집은 심판이 넘어갔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 우리를 위해 죽임당한 어린 양이시며
  • 그 피로 우리를 보호하는 ‘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자이면서 동시에 문이 되시는 것입니다.



양은 왜 목자의 음성을 아는가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중동 문화 연구에 따르면, 새로 들어온 양은 일정 기간 동안 훈련을 통해 주인의 음성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집니다. 배고픔과 반복적인 경험 속에서, 양은 결국 주인의 음성만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소속’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반대로 듣지 않는다면, 아직 그분께 속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듣는 것’은 육적인 청각이 아니라 영적인 반응입니다.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

“또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이 말씀은 요한복음 10장의 핵심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양들만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밖에 있는, 길을 잃은 양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 양들은

  •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 아직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는 사명은 이제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부활 이후 베드로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이 명령은 베드로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보호받는 양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다른 양을 돌보는 사명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삶은 ‘길 위’

요한복음 10장은 단순히 ‘안전하게 보호받는 삶’을 말하는 장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
  •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 그리고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잃어버린 양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 땅에 남겨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머무는 삶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길 위의 삶’이어야 합니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