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11.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요한복음 3:1-5)

요한복음 강해 11.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요한복음 3:1-5)

이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
11번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라는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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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관을 내려놓고

요한복음 3장은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인물, 니고데모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니고데모라는 이름의 뜻은 ‘정복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그의 모습은 이름의 의미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우리에게 은혜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관입니다.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오히려 말씀을 새롭게 듣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따라서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음성으로 다가오는가?”

니고데모에 대해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 이스라엘 최고의 지성
  • 영적인 갈증을 가진 사람
  •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

그러나 이러한 이해 역시 잠시 내려놓고 성경 본문을 따라가야 합니다. 니고데모라는 인물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2장의 마지막 장면과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표적을 보고 믿은 믿음

요한복음 2장에는 유월절 장면이 등장합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절기이며 그 핵심은 희생의 어린 양입니다. 이 어린 양은 장차 세상의 죄를 지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입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더라.”
— 요한복음 2:23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두 가지 등장합니다.
‘표적’‘믿었다’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강조하려는 핵심은 단순히 표적이나 믿음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보고 믿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의 평가가 등장합니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 요한복음 2:24

여기서 “의탁하지 아니하셨다”라는 표현은 헬라어 피스튜오(pisteuo)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믿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었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믿지 않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표적을 보고 믿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니고데모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유대교를 대표하는 인물

요한복음 3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 요한복음 3:1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정보가 등장합니다.


바리새인

오늘날 바리새인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교가 타락해 갈 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는 경건한 운동으로 시작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도 ‘분리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주의가 강해지고 결국 종교적 형식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

니고데모는 단순한 종교인이 아닙니다.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 즉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 권력 기관으로

  • 입법
  • 사법
  • 행정

권한이 모두 집중된 곳이었습니다. 백성의 생사여탈권까지 결정하는 권력의 중심이었습니다.

즉 니고데모는 유대 사회의 최고 엘리트였습니다.


이름의 의미

니고데모라는 이름은 ‘정복자’라는 뜻입니다. 최근 신학자 리차드 보컴의 연구에 따르면 니고데모는 구리온 가문과 연결된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이 가문은 하스모니안 시대의 전쟁 영웅 가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니고데모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 권력
  • 명예

모든 것을 가진 유대 사회의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니고데모의 방문

니고데모는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 요한복음 3:2

이 말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니고데모를 진리를 찾는 사람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이런 방식의 인사말이 논쟁을 시작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상대를 먼저 치켜세운 뒤 본격적인 논쟁을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 속에서 중요한 단서가 하나 드러납니다.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

니고데모 역시 표적을 보고 찾아온 사람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인들의 믿음 상태를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직설적인 응답

니고데모의 말이 끝나자 예수님은 매우 직설적으로 대답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요한복음 3:3

이 말은 상당히 냉정하고 직설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진리를 찾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라 논쟁을 시작하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중심을 바로 짚어 말씀하십니다.

“네가 거듭나야 한다.”



밤이라는 시간의 의미

요한복음은 니고데모가 밤에 왔다고 강조합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 요한복음 3:2

많은 사람들은 니고데모가 체면 때문에 밤에 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시간 표시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러 나가는 장면에서도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요한복음 13:30

요한은 이라는 표현을 통해 영적인 어둠을 상징적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니고데모가 밤에 왔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 영적인 어둠
  • 깨닫지 못하는 상태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

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거듭남의 의미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요한복음 3:5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물과 성령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이 내용은 에스겔서에서 이미 예언된 말씀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 에스겔 36:25–26

물은 정결케 하는 기능을 상징합니다.
성령은 새 마음과 새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즉 거듭남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사건입니다.



구원의 신비

예수님은 거듭남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 요한복음 3:8

구원은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바람처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구원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를 향한 이야기

결국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구원의 핵심을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 요한복음 3:14

요한복음에서 “들려야 한다”는 표현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 3:16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삶

요한복음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요한복음 1:12–13

구원은 인간의 계획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새로운 생명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주님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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