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1.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 (요한복음 20:30-31)

요한복음 강해 1.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

이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강해
1번째,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란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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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어야할 요한복음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해요.
“성경을 처음 읽는다면 어디서부터 읽는 게 좋을까요?”

그럴 때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구약은 창세기부터, 신약은 요한복음부터 읽는 것이 좋다고요.

그만큼 요한복음은 성경 전체 안에서도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분의 사역과 죽음,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가장 깊이 있고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복음서이기 때문이에요.

오늘은 요한복음 강해의 첫 시간, 바로 서론입니다.
서론은 문을 여는 시간이고, 방향을 잡는 시간이기에 굉장히 중요해요.



요한복음 전체 구조

요한복음은 크게 두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요.

첫 번째는 1장부터 12장까지,
두 번째는 13장부터 21장까지입니다.

이 두 덩어리를 이해하면 요한복음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요.

1. 프롤로그(1장)

2. 표적의 책(2-12장)
- 표적과 말씀
- 오해와 충돌

3. 영광의 책(13-20장)
-고별설교와 중보기도
-십자가와 부활

4. 에필로그(21장)


1장 – 프롤로그, 머리말

요한복음 1장은 프롤로그, 즉 머리말에 해당해요.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 증언되어야 하는지가 선포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며, 하나님이시며, 생명이시라는 사실이 처음부터 분명히 선언돼요.



표적의 책

요한복음 2장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나안 혼인잔치 사건을 시작으로, 요한복음에는 7개의 이적이 아니라 ‘표적’이 등장해요.

여기서 중요한 단어 하나를 기억해야 해요.
요한은 이 사건들을 ‘기적(miracle)’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헬라어로 표적은 ‘세메이온(σημεῖον)’,
이 말의 뜻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사인(sign)이에요.

표적은 보여주기 위한 능력이 아니라,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신호입니다.


‘때’

요한복음에 나오는 모든 표적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때’라는 개념이에요.

이 ‘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때와 맞물려 있어요.
표적 하나하나 속에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암시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표적이 많아질수록, 갈등도 함께 깊어져요.
어떤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 믿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기 시작해요.

이 과정 속에서 정부 당국, 종교 지도자, 백성들 모두가 예수님을 향한 거대한 저항 세력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갈등은 예수님을 점점 십자가로 몰아가요.

그래서 이 첫 번째 덩어리를 ‘표적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영광의 책

13장부터 요한복음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시고, 사역의 초점을 바꾸세요.

표적의 책에서는 많은 무리가 등장했다면,
영광의 책에서는 그 범위가 열두 제자로 좁혀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고 아버지께로 돌아간 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이어갈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세요.

특히 14장부터 17장까지는
공동체가 무엇으로 세워지는지,
제자들이 파송될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에 대한 깊은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17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유일하게 대제사장적 기도를 직접 하나님께 올려드리세요.



십자가

18장부터 20장까지는 예수님의 체포, 고난,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아주 독특한 패턴이 하나 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비참함과 절망의 길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요한은 십자가의 길을 ‘영광의 길’로 그려요.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영광이란 무엇일까요?

영광이란,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그 계획을 이 세상 가운데 드러내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명, 혹은 소명이라고 부르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향해 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 함이라”

이 말은 곧,
아버지의 뜻을 알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고백이에요.

그래서 요한복음 강해를 들으며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향해 가지신 계획이 무엇인가요?

그 계획이 발견될 때,
그것은 우리의 사명이고 소명이 되며,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됩니다.

그래서 두 번째 덩어리는 ‘영광의 책’이라고 불립니다.



회복과 파송

요한복음 마지막 21장은 에필로그입니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해요.

실패하고 낙향했던 베드로,
예수님의 등에 비수를 꽂았던 그 베드로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세요.

뿌연 새벽, 갈릴리 바닷가에서 조반을 먹이시고
사도권을 회복시키며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는 장면으로 요한복음은 끝이 납니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자들을 회복시키고, 세상으로 파송하기 위한 책입니다.



요한복음 기록 목적

요한복음은 스스로 기록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이보다 더 명확한 목적 설명은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철저히 기독론, 즉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히기 위해 기록된 책이에요.



기독론과 영지주의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영지주의(그노시즘)라는 사상이 교회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어요.

영지주의는 육과 영을 분리합니다.
육은 더럽고, 영만이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이 사상은 두 극단으로 흘러갔습니다.
하나는 방탕주의,
다른 하나는 초극단적 금욕주의입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을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부정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요한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지키기 위해 요한은 붓을 들었습니다.



AD 70년 이후

요한복음은 AD 70년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는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해 성전을 무너뜨린 이후였어요.

그리스도인들은 극심한 박해와 위협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신앙을 지켜야 할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선 성도들에게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고난은 패배가 아니라, 영광의 통로라고요.



저자 요한, 사랑의 사도

요한복음의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원래 ‘우뢰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다혈질이었어요.

“주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멸할까요?”

이렇게 말하던 제자가
훗날 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요한일·이·삼서는 모두 사랑을 주제로 한 서신이에요.
예수님은 철없던 제자를 변화시켜 사랑의 사람으로 만드셨어요.



예수의 품에 안긴 제자

요한복음 13장, 마지막 만찬 장면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한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해 있었다고 기록해요.

이 표현은 우연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은 본래 아버지 품에 계셨던 분이에요.
그리고 성도의 최종 목적지도 바로 아버지의 품입니다.

탕자가 언제 회복되었나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입니다.



아버지의 품으로

요한복음의 목적지는 분명합니다.
점수를 따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받는 아들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비록 고난의 길일지라도
아버지의 품으로 향하는 삶을 걷는 것.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발견되고,
그 계획이 사명과 소명으로 확인되며,
마침내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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