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9. 천 년 동안 (계 20:1-3)

요한계시록의 큰 구조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 구조를 한 번에 조망하는 것이 중요해요.
1장은 서론이고, 2장과 3장은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단순히 지역 교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 당시 도미티안 황제 치하에서 박해를 받고 있던 교회들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 다음 흐름이 중요해요.
2장과 3장에서 땅의 교회 이야기가 나오고 나면, 4장과 5장에서는 시선이 하늘로 전환됩니다. 이때 요한이 본 것은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배의 장면이에요.
4장은 성부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고,
5장은 그 하나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받아 인을 떼시는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6장부터 16장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해석이 까다로운 부분은 6장부터 16장까지입니다. 이 구간에는 네 개의 사이클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표적
일곱 대적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일곱 인은 사도 요한 당시 도미티안 박해를 묵시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어요.
그 다음 일곱 나팔은 무엇일까요?
요한계시록 6장 10절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탄원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에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던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일곱 나팔로 나타납니다.
일곱 표적은 다시 한 번 앞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해석해 주는 역할을 하고요.
그리고 일곱 대적은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대적, 마지막 재앙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바벨론의 멸망
오늘 우리가 집중해서 볼 부분은 요한계시록 17장부터 20장이에요.
먼저 17장과 18장은 바벨론의 멸망, 19장과 20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적 승리, 그리고 21장과 22장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보여줍니다.
큰 음녀의 정체
요한계시록 17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서 등장하는 ‘큰 음녀’는 누구일까요?
15절은 그 힌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이 ‘물’은 마시는 물이 아니라 민족과 나라와 사람들의 세력을 의미해요. 즉, 이 여자는 많은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고 있는 존재입니다.
3절을 보면 이 여자의 또 다른 특징이 나옵니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이 장면은 13장에서 등장했던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해요.
일곱 머리와 열 뿔은 다니엘서 7장을 배경으로 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권세의 전형적인 상징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여자가 그 짐승을 타고 있다는 거예요.
즉, 이 여자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그 권세를 조종하고 이용하는 존재입니다.
바벨론의 의미
5절을 보면 결정적인 단서가 나옵니다.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여자를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생겨요. 사도 요한이 살던 1세기 로마 시대에 실제로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존재했을까요?
아니요. 바벨론은 이미 주전 539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바벨론은 실제 국가 바벨론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가리키는 상징이에요.
6절을 보세요.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이 여자는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도들, 그리고 예수의 증인들만을 선택적으로 핍박합니다.
일곱 언덕 위에 앉은 큰 성
9절과 18절은 그 정체를 거의 확정적으로 보여줍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사도 요한 당시, 일곱 언덕 위에서 시작된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로마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7장의 큰 음녀는 한 개인이 아니라,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 성경 전체 흐름과 가장 잘 맞아요.
왜 로마가 바벨론인가?
그렇다면 왜 성경은 로마를 그냥 로마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바벨론이라고 부를까요?
구약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한 나라였습니다.
주전 586년,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로마가 같은 일을 합니다.
AD 70년, 디도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파괴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이스라엘을 괴롭혔지만, 성전에 손을 댄 나라는 바벨론과 로마뿐이었어요.
그래서 신약 성경은 로마를 영적 바벨론으로 부릅니다.
왜 ‘음녀’, 왜 ‘여자’인가
또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왜 로마를 남자가 아니라 여자, 그것도 음녀로 묘사할까요?
로마는 군사 제국이었고, 이미지로 보면 남성적인 나라입니다.
그러나 로마에는 중요한 종교적 배경이 있어요.
로마의 시조신은 마그나 마테르, 즉 대모신이었습니다.
이 여신은 일반적으로 시벨레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로마 제국 시대에는 여자신이 주신인 도시들이 많았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그리고 로마의 마그나 마테르.
이런 배경 속에서 로마는 음녀라는 이미지로 묘사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바벨론의 멸망
요한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중요한 점은, 이 말씀이 주어질 당시 로마는 전혀 멸망의 조짐이 없었다는 사실이에요.
오히려 도미티안 통치 아래에서 로마는 더욱 강성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고요.
천년
이제 20장으로 넘어가면, 가장 많이 논쟁되는 주제가 등장합니다. 바로 천년입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여기서 ‘천년’은 문자적 숫자가 아니라, 매우 긴 시간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사탄은 회개해서 풀려나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 심판을 받기 위해 재판장으로 끌려나오는 것입니다.
사탄의 결박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에요.
사탄이 결박된 사건은 이미 일어났을까요,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까요?
복음서를 보면 힌트가 많습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누가복음 10장)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마태복음 12장)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사탄의 결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해요.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사이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완성되었고,
그 완성된 나라가 지금 우리의 삶에 임하도록 살아가라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예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장)
그리고 예수님의 첫 설교에서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장)
포로된 자가 자유케 되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을 주는 책이 아니라, 소망을 주는 책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를 이렇게 가르치셨죠.
“나라가 임하시오며”
지금 내가 있는 자리,
가정과 직장과 관계와 고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도록 살아가라는 초청입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스데반처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