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강, 오순절 날이 이르매

하나님 나라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가장 많이, 가장 반복적으로 말씀하신 주제가 있다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약 3년 동안의 설교와 가르침, 그리고 수많은 비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 나라로 수렴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시작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이 말은 단순한 수사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중심에 하나님 나라가 놓여 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입니다.
이제 이 땅에 남아 계실 시간이 40일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예수님은 다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제자들이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오해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다음에나 경험하는 것이다.”
“사람은 결국 죽으면 끝이다.”
성경은 이 생각을 단호히 부정합니다. 예수님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이 개념을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성령을 통해 실제로 경험되는 현실입니다.
기도 중에 성령이 임할 때,
분노가 사라지고, 좌절이 물러가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는 경험.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경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또 다른 오해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속성이 있습니다.
바로 미래성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크기
이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비유가 바로 겨자씨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1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지금 우리가 기도 중에 경험하는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충만함은 분명 놀랍고 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 경험하는 그 하나님 나라,
그건 겨자씨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지금의 경험은 수만 배, 수십만 배로 확장될 영광의 시작일 뿐입니다.
진짜 복
이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이 땅에 소망을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5장에서 전혀 다른 복의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여기서 ‘가난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프토코스(ptōchos)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경제적 빈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며칠, 몇 주를 굶은 사람이 배를 움켜쥐고 구걸하는 절박한 상태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절박함입니다.
애통함
팔복의 두 번째 복은 ‘애통하는 자’입니다.
이 애통은 단순한 슬픔이나 눈물이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음을 아파하는 마음”
“내 안에 죄와 욕심이 가득함을 슬퍼하는 마음”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애통입니다.
자기 가슴을 치며 드리는 세리의 기도와 같은 상태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과 은 하나의 흐름으로 읽혀야 합니다.
- 누가복음: 갈릴리 → 유대 → 사마리아 → 예루살렘
- 사도행전: 예루살렘 → 유대 → 사마리아 → 땅끝
두 책 모두 시작점에 성령의 임재가 있습니다.
성령임재
예수님께 성령이 임할 때는 비둘기처럼 임했습니다.
비둘기는 의 노아 이야기에서처럼
심판이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입니다.
반면, 오순절 날 성령은 불의 혀처럼 임했습니다.
이는 11장의 바벨탑 사건과 정반대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 흩어졌던 언어 → 하나로 이해됨
- 흩어진 민족 → 한곳으로 모임
이는 구약의 저주가 성령 안에서 회복되었음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유일한 길
사도행전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원리는 명확합니다.
성령은 언제 임하시는가?
기도할 때입니다.
-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 120명이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 교회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성령이 말씀하셨습니다.
방법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무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 한 번도 이 원리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축복이 기도를 식히지 않게
아이러니하게도, 문제 해결과 축복은 때로 기도를 멈추게 합니다.
그래서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가 바로 문제가 해결된 이후입니다.
“하나님,
내가 받은 축복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평생 주님을 향한 절박함이 식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오늘도 이 한 가지를 간구하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하나님 나라를 향한 절박한 마음을 주십시오.”
그 마음이 있는 자를
성경은, 그리고 예수님은 복되다고 선언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