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강, 1차 전도 여행 (행 13:1-3)

통제할 수 있는 것 없는 것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리 애써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오전에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어요.
하지만 누가 날씨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날씨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들은 내가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지만,
어떤 일들은 전혀 내 손을 벗어나 있어요.
스데반에게 일어난 일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거짓 고소, 강압적인 재판, 불법적인 절차, 산해드린의 거짓 판결,
그리고 분노에 휩싸인 군중들이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이려는 상황까지—
이 모든 것은 스데반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가 무엇을 하든,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입술
그러나 스데반은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길 수는 있어도,
그 와중에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남아 있다는 것을요.
그것은 바로 마음과 입술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협박하고, 위협하고,
“거짓 증언을 해라”, “잘못했다고 말해라”라고 압박해도
그의 마음은 그의 것이었고, 그의 입술도 그의 것이었어요.
“내 마음은 내 것입니다.
이 입술도 내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산해드린의 뜻대로,
사탄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1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뒤집는 1분
만약 그 마지막 순간에
스데반이 저주하며 죽었다면,
분노를 쏟아냈다면,
“예수 같은 건 안 믿는다”고 외쳤다면—
그때는 사탄이 이긴 것이었을 겁니다.
산해드린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스데반은 마지막 순간,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 입술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합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누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한 기도로, 그 순교의 현장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사탄이 이긴 것 같았던 그 순간,
마지막 1분을 남겨두고 모든 것이 역전됩니다.
스데반의 기도가 낳은 한 사람
그 기도의 결과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스데반의 죽음 현장에 서서
그를 죽이는 일에 동의했던 한 사람이
훗날 복음을 세계로 전하는 사도가 될 줄을요.
스데반은 목사도 아니었고,
장로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집사면 어떻고, 장로면 어떻습니까.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분노와 원망을 쏟아냈다면 모든 것은 거기서 끝났을 거예요.
축복하는 입술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일은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반드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 그리고 내 입술입니다.
저주의 말을 쏟아내지 마세요.
분노와 진노로 나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을 태우지 마세요.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내 입술을 다스려
축복의 말이 흘러가게 하세요.
다메섹 도상에서의 음성
스데반의 기도 이후,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님은 사울을 만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이 질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울이 알고 있던 확신은 하나였기 때문이에요.
“예수는 죽었다.”
로마 군인이 확인했고,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지금
자기 앞에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사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를 핍박했을까요?
그 순간 사울에게 계시가 임합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곧 예수를 핍박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교회론이 정립됩니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냥 개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그때 사도 바울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이 질문은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에고 에이미 이에수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예수다.”
이 말은 곧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인격적 만남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한 번만 만나면
모든 논쟁은 의미를 잃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만남은
우리가 반드시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중요한 신앙의 유산입니다.
부르심 이후에 기다림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때는
AD 32년경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역은
사도행전 13장, AD 46년경이에요.
무려 14년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힘을 빼는 시간이었어요.
보냄을 받은 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뜻이 아니라
보내신 이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미드바르, 말씀의 광야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입니다.
이 단어는 따바르, 곧 ‘말씀’에서 나왔어요.
광야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오직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광야를 거칩니다.
그곳에서 말씀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의 순종과 선교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 교회는 최고의 사람들,
바나바와 바울을 내어놓습니다.
선교는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순종으로
복음은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복음의 핵심 세 가지
사도행전에 기록된 복음 설교에는
공통된 핵심이 있습니다.
- 예수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다
- 말씀대로 부활하셨다
- 그 예수는 지금 살아계신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