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과 하나님의 마음-나봇의 포도원
이 글은 김병삼 목사님의
"엘리야와 엘리사 시리즈 5편"의 설교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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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
이번 엘리야·엘리사 시리즈 다섯 번째 말씀은, 사실 지난 해 이미 준비해 두었던 내용이고 올해 성지순례에서 촬영까지 마친 영상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추수감사절에 딱 맞춰 전해지게 된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도하시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인간의 욕망과 하나님의 마음”, 본문은 열왕기상 21장 1–29절,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삶에 적용할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엘리야, 다시 아합 앞에 서다
로뎀나무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붓고 사명을 이어가면서 이스라엘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다시 명령하십니다.
“아합왕 앞에 서라. 그는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으려고 한다.”
나봇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포도원을 내어주지 않았고, 이세벨은 그를 거짓으로 고소하여 죽게 함으로써 땅을 강탈했습니다. 그 모든 일을 옆에서 보면서도 침묵한 아합의 태도는 더욱 큰 문제였습니다.
전략적 요충지, 나봇의 포도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아합이 단순히 “예쁘니까 정원으로 삼자”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곳, 이스르엘(텔 이스르엘) 은 이스라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남북을 가르는 족장의 길과 해변길이 반드시 지나가는 곳. 병거를 활용하는 군사력의 핵심 지역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아합의 입장에서는 이 땅을 차지하고 싶어진 게 어찌 보면 당연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땅은 사고팔 수 없는 기업, 나할라였습니다. 나봇이 포도원을 팔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순종이었습니다.
탐욕의 본질
욕망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자리와 지위,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욕망을 어떻게 실현하려 하는가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감사가 있을 때 우리는 욕망에 흔들리지 않지만, 감사를 잃어버리면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이 끝없이 올라옵니다.
나봇의 포도원 하나 없어도 아합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망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법보다 욕망을 앞세운 순간, 죄가 시작된 것이죠.
하나님의 법을 넘어선 죄
레위기 25장 23절은 말합니다.
“토지는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민수기 36장 7절도 기업을 함부로 옮기지 말라고 명합니다.
즉,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업은 재산 증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도록 주신 자리였습니다.
나봇은 바로 이 율법을 지키고 있었고, 아합은 그 법을 알고도 넘어서려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땅 한 필지를 탐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죄였습니다.
‘일말의 양심’을 무너뜨리는 한마디
아합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습니다.
포도원을 차지하고 싶었지만 죄를 직접 짓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전전긍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 이세벨이 말합니다.
“당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 아닙니까?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 한마디가 아합의 양심을 단숨에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죄에 넘어갈 때도 비슷합니다.
“누군가의 동의, 누군가의 한마디”가 양심의 마지막 선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렇게 말하죠.
“나는 죄를 지을 마음이 없었는데… 누가 그러라고 했어.”
이것이 가장 비겁한 죄의 모습입니다.
절차는 정당했지만, 마음은 악했다
이세벨은 율법의 절차를 악용해 나봇을 죽입니다.
두세 증인의 말만 맞추면 신성모독으로 돌로 처형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절차적 정당성’이 있어 보였지만
그 마음은 완전히 악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절차나 명분보다 “그 마음이 어떤가”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이용해 죄를 정당화하는 일은 지금도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감추는 인간의 기술에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도 찾으신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심판을 전하러 갑니다.
그때 아합이 묻습니다.
“네가 나를 찾았느냐?”
엘리야는 말합니다.
“내가 너를 찾았다.”
이 말의 본질은 하나님이 아합을 찾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 짓는 자도 찾으시고, 부르짖는 자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찾으심은 기쁨이지만,
죄인이 숨으려 할 때 하나님의 찾으심은 두려움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마음
심판의 말씀을 들은 아합은 옷을 찢고 금식하며 겸손히 납작 엎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보느냐?”
그 말투에는 아버지의 마음, 기다렸던 눈물 같은 온유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 겸비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아합의 시대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심판을 선언하셨던 하나님이지만,
돌아오는 자를 보시고는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두 가지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를 선명하게 가르칩니다.
1. 유혹 앞에서 말씀 앞에 서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않으면 우리는 욕망에 쉽게 넘어갑니다.
감사를 잃으면 욕망이 지배하고, 욕망은 결국 죄의 문을 열게 됩니다.
2. 돌아오면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혹시 삶이 하나님 뜻에서 벗어나 있다면,
아합처럼 하나님 앞에 겸비할 때 하나님은 언제든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얘들아, 보았니? 그가 내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보았니?”
하나님의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