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뻐하기 위해 싸우라 (시 37:3~6)
이 글은 김용신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을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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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악인이 잘될 때 마음이 불편할까
재벌집 막내아들, 금수저, ‘조물주 밑에 건물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부러움이 올라올 때가 있지요. 그런데 더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승승장구할 때예요.
“정말 하나님 살아계신 걸까?”라는 의문이 생길 만큼 현실과 신앙이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오지요.
시편 37편을 기록한 다윗도 같은 고민을 했어요. 젊을 때부터 나이 들어 돌아보니, 세상에는 부조리와 모순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되었고, 그 현실 속에서 마음이 흔들렸다고 고백합니다.
불평과 시기의 유혹
다윗은 이렇게 말해요.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
불평은 이런 마음에서 나와요.
“왜 하나님은 저런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시는 걸까?”
시기는 이렇게 속삭여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왜 나는 그렇지 못하지?”
결국 시기는 ‘나도 그 죄를 짓고 싶다’라는 숨은 욕망이 드러난 마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평과 시기로 반응하길 원치 않으신다고요.
진짜 처방, 여호와를 기뻐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다’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의미는 조금 달라요.
하나님을 기뻐하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된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기뻐할 때 이루어지는 건
내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춰진 참된 기쁨의 성취예요.
하나님을 기뻐하기 어려운 이유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환경 때문에 기쁨을 잃을 때가 많아요.
불평하게 하는 사람들, 비교하게 만드는 상황들, 세상에 잘되는 악인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기쁨을 자꾸 빼앗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기뻐하기 위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이 싸움에서 핵심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 싸움: 위를 보라
환경을 보면 기쁨을 잃어요.
사람을 보면 실망합니다.
상황을 보면 낙심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해요.
“여호와를 의뢰하라. 그분의 성실을 네 먹을거리로 삼으라.”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내 힘이 되고, 내 안정이 되고, 나의 공급이 된다는 뜻이지요.
또 이렇게 말해요.
“내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여기서 ‘맡기다’란 원어로 '굴리다'로, 즉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완전히 넘긴다는 뜻이에요.
하나님께 굴려 맡기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의’를 빛처럼 드러내신다고 하셨어요.
즉,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하며 사는 삶을 하나님이 세상 가운데 보여주신다는 의미예요.
사람은 끝까지 우리 짐을 져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게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말씀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두 번째 싸움: 앞을 보라
기쁨은 소망에서 나옵니다.
앞을 보지 않으면 현재의 불의와 부조리만 보이기 때문에 마음을 잃어버려요.
시편 37편에서 하나님은 악인의 결말을 분명히 하셨어요.
- 풀처럼 베임을 당하고
- 순식간에 쇠잔하고
- 끊어지고
- 없어지고
- 멸망한다
지금은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의 번영은 화려한 리본을 두르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살찐 소와 같다—스펄전의 표현이 이렇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의 결말은 완전히 달라요.
- 넘어질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엎드러지지 않고
- 버림받지 않고
- 그 자손까지 보호받고
- 땅을 차지하고
- 하나님의 정의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진짜 승자는 마지막 결승선에서 이기는 사람이에요.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예요.
기도 중에 들려온 질문
얼마 전, 교회가 아닌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 집중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목회와 교회를 위해 제 자신을 돌아보며 참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어떻게 목회하고 있는가?”
그때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어요.
교회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을 것 같아요.
1. 성도는 행복하지만 목회자는 행복하지 않은 교회
2. 목회자는 행복하지만 성도는 행복하지 않은 교회
3. 성도도 목회자도 행복한 교회
당연히 모두가 바라보는 교회는 세 번째일 거예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떠한가… 그 질문이 깊이 내려앉았습니다.
목회자의 마음, 사람 앞에서 무너질 때
목회도 결국 사람을 섬기는 일이기에 마음이 부대끼는 순간이 많아요.
성도마다 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목회자를 고용된 사람처럼 대하는 이들도 있지요.
잘해주는 분들에게 마음이 열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반대로 힘든 관계 앞에서는 마음이 쉽게 지쳐버립니다.
그런데 감사한 건,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성도님들 때문이라는 거예요.
섬기고, 애쓰고, 베풀며, 사랑으로 함께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버티고,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그 사랑을 경험할 때마다 “아, 내가 참 복을 받았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설교 준비 앞에서는 또 무너진다
설교 준비는 여전히 어렵고, 때론 너무 힘들어요.
가족들에게 날카롭게 대하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언제쯤 설교를 평안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어제도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성도 한 분이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목사님, 최근 2~3주 설교 왜 이렇게 좋아요?”
그 말이 제 마음을 울렸어요.
은혜를 받는 성도님의 마음이 감사했고,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이제 저에게 ‘적응이 되었다’라고 말하며 함께 웃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가정은 교회를 결정할 때 멘토에게 이렇게 들었다고 해요.
“목사님 설교를 평가해서 가지 마라.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나누고 베풀기 위해 가라.”
그 말이 너무 뭉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물으신 한마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질문을 주셨어요.
“용신아, 너 행복하니?”
“목회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것이 행복하니?”
그 질문 앞에서 마음이 무너졌고, 벤치에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결국 목회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기쁨이 흐려져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생기는 일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금방 의무감으로 변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했으니 채워주세요.”
이러다 보면 신앙은 샤머니즘과 다를 게 없어요.
신앙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기쁨을 회복하는 길
정필도 목사님은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기쁨이 사라졌을 때는 강단에 1~2시간 먼저 올라가 울며 기도하라.
하나님, 제 기쁨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러고 나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에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신다.”
너무 귀한 조언이었어요.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기쁨이 사라질 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해요.
골방에서, 금요기도회에서, 어디에서든 하나님께 기쁨을 달라고 구해야 해요.
신앙인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마다 내가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 안에서 내 영혼이 행복을 누리는 일입니다.”
맞아요.
우리가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기쁨을 빼앗아갈 때,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앞이 막힌 것처럼 보일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배는 ‘내가 행복해지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리’
예배는 은혜 받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 영광을 독차지하는 분이 아니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할 때,
그 영광을 다시 우리에게 비추시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우리의 찬양은 기쁨의 완성
찬양은 기쁨의 표현을 넘어서
기쁨을 완성시키는 행위예요.
그래서 우리는 찬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이 고백이 우리의 신앙을 다시 살리고, 기쁨을 되찾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기 위한 싸움
이 땅에는 고난이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우리와의 관계를 정오의 빛처럼 밝히 드러내시는 분이에요.
우리가 해야 할 싸움은 딱 한 가지예요.
하나님을 기뻐하는 싸움.
- 환경이 흔들려도
- 사람에게 상처 받아도
- 현실이 힘들어도
위로 눈을 들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앞으로 주시는 소망을 바라보고,
입술로 찬양하며 고백합시다.
“내가 여호와를 기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