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30. 두 가지 영광 (요한복음 12:37-43)

요한복음 강해 30. 두 가지 영광

이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
30번째, 두가지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전하신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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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의 책

요한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1장부터 12장까지는 ‘표적의 책’으로 불리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표적들을 통해 그분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구간입니다. 그리고 13장부터 20장까지는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한 ‘영광의 책’이며, 21장은 마치 에필로그처럼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본문은 바로 이 ‘표적의 책’의 결말에 해당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번째 표적으로 시작된 이 여정은, 나사로의 부활이라는 마지막 표적으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표적들을 본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요 12:37)

놀랍게도, 그렇게 많은 기적과 표적을 직접 목격하고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 본문은 바로 그 ‘표적’을 기초로 나타난 세 가지 반응을 보여줍니다.



1. 끝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

첫 번째 부류는 끝까지 믿지 않고 예수님을 배척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반응은 단순한 무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 배경을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설명합니다.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요 12:38)

이는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1-2)

메시아는 사람들이 기대하던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외면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사 53:3)

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단순한 지식 부족이 아니라, 더 깊은 문제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요 12:40)

이 말씀은 하나님이 억지로 눈을 가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선택과 완고함의 결과를 말합니다. 요한은 그 핵심 이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 12:43)

결국 자기 영광, 자기 왕국,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 그들의 눈을 가린 것입니다.



2. 믿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관리들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요 12:42)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노력하여 얻은 자리와 명예,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지위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있었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출교는 단순한 종교적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곧 사회적 죽음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의 상태를 분명하게 평가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 12:43)

믿음은 있었지만, 여전히 두 개의 영광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 사이에서 결단하지 못하는 ‘경계선의 신앙’이었습니다.



3. 보냄받은 자로 사는 삶

세 번째 부류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참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요 12:44)

여기서 “외쳐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선포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바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 역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존재입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명령하여 주셨으니” (요 12:49)

예수님의 삶은 철저히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분의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요 12:50)

결국 세 번째 신앙은 ‘보냄받은 자로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것이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세 가지 신앙의 갈림길 앞에서

이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 신앙의 유형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 믿지만 숨기는 사람, 그리고 보냄받은 자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 하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 아래에서 “가이사는 주님이다”라는 고백을 거부하고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외친 그리스도인들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두려움을 뛰어넘는 더 큰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영상을 보고 결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붙들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오늘을 향한 세 가지 기도

이 말씀은 세 가지 기도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첫째, 생명의 위협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박해받는 신앙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경계선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셋째, 보냄받은 자로서 복음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이 고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고백이 단순한 찬양의 가사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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