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9. 혼인잔치(02) (요한복음 2:1-11)

등장 인물들의 다른 시선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단순히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을 기록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 장면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하면서도 서로 다른 시선과 이해를 보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이 사건이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믿음의 본질을 보여주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구약의 한 장면과도 비슷합니다.
열왕기상에서 엘리야가 갈멜산에 올라 기도할 때, 그곳에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야, 아합왕, 그리고 하인입니다.
세 사람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했지만 각자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며 비의 소리를 들었고, 아합은 먹고 마시는 데 집중했으며, 하인은 심부름만 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 사건에는 예수님, 마리아, 하인들, 연회장, 그리고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같은 사건을 경험하지만, 그들의 이해와 반응은 서로 다릅니다.
표적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데리고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십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입니다.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리키는 표지판과 같은 사건입니다.
그 표적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드러내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한복음 2:4)
여기서 “내 때”는 요한복음에서 일곱 번 등장하는 표현으로,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첫 표적을 통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 곧 십자가에서 흘릴 피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사건은 장차 흘릴 대속의 피를 가리키는 표적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시선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내적 변화를 가져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단순히 잔치의 상황을 알리는 마음으로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요한복음 2:3)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어머니의 요청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은 마리아에게 깊은 감정의 변화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마리아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요한복음 2:5)
이 말에는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는 이제 예수를 단순한 아들이 아니라 메시아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둘째, 그녀는 평생 지켜온 신앙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말씀대로 하라”는 순종의 자세입니다.
이 순종은 이미 예수님의 탄생 때부터 나타났습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2:35)
마리아의 삶은 이미 고통을 동반한 순종의 길이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나의 혼인잔치는, 육신의 아들을 떠나 메시아를 바라보는 믿음의 첫 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인들의 시선
세 번째 인물은 하인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요한복음 2:7)
하인들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명령에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항아리를 절반만 채운 것이 아니라, 아귀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둘째, 성경에는 하인들의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포도주가 어디서 왔는지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기적을 경험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모습입니다.
연회장의 시선
네 번째 인물은 연회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회장은 장소가 아니라 잔치를 총괄하는 사람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한복음 2:9)
연회장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심지어 그 포도주를 직접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포도주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습니다.
기적을 경험하고도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의 모습이 바로 연회장입니다.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누리지만, 그 은혜의 근원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제자들의 믿음
이 사건에는 한 무리가 더 등장합니다.
바로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의 결론은 제자들의 믿음으로 끝납니다.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한복음 2:2)
그리고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심에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11)
놀라운 점은, 제자들은 이미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요한복음 1:41)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한복음 1:45)
그들은 이미 예수를 만났지만, 아직 믿음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의 표적을 통해 예수의 “영광”을 보고 믿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광은 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
요한은 이 복음을 기록한 이유를 분명히 밝힙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31)
가나의 첫 표적도 바로 이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위치
가나의 혼인잔치에는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적을 경험했지만 거기서 멈춘 하인들,
기적을 맛보고도 모르는 연회장,
아들에서 메시아로 인식이 변화된 마리아,
그리고 결국 믿음에 이른 제자들.
교회 안에도 이런 다양한 믿음의 단계가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믿음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믿음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리의 문제입니다.
또한 인생의 수많은 사건과 문제를 단순히 유익과 손해의 기준으로만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허락하시는 사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우리를 믿음으로 이끄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의 첫 표적은 단순한 기적의 이야기가 아니라, 믿음을 향해 나아가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그리고 그 초대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