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8. 혼인잔치(01) (요한복음 2:1-11)

요한복음 강해 8. 혼인잔치(01) (요한복음 2:1-11)

이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
8번째, 혼인잔치(01)이라는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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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표적의 시작

요한복음 1장의 장엄한 서론이 끝나고, 이제 복음서는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들어갑니다.
그 첫 장면이 바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번의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번에 읽고 지나갈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그 위치와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흘째 되던 날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한복음 2:1)

본문은 “사흘째 되던 날”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사흘”은 부활의 수치입니다. 예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에서 반복되던 “이튿날”이라는 표현을 따라 계산해 보면, 이 사건은 전체 흐름 속에서 여섯째 날에 해당합니다.
성경에서 여섯이라는 숫자는 창조의 모티브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여섯 날 동안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창조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고통과 죽음, 불행이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여섯째 날에 첫 표적을 행하시는 것은,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무너진 창조를 회복하는 새 창조의 출발점이 바로 이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갈릴리 가나

요한복음은 장소 선택에서도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은 갈릴리 가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요한복음 21:2)

가나는 나다나엘의 고향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그 “더 큰 일”이 바로 가나에서 펼쳐지는 이 첫 표적입니다. 즉, 요한복음 1장의 부르심과 2장의 사건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인잔치

가나에서 벌어진 사건의 배경은 혼인잔치입니다.
유대인의 결혼은 단순한 하루의 행사가 아니라, 약 1년에 걸쳐 진행되는 큰 의식이었습니다.

먼저 신부 집에서 정혼이 이루어지면, 법적으로는 부부가 되지만 육체적 결합은 하지 않습니다.
그 후 신랑은 집으로 돌아가 약 1년 동안 신부를 위한 처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신부를 데려와 본격적인 혼인잔치를 치릅니다.

이 구조는 요한복음 14장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한복음 14:2)

사실 성경 전체는 혼인 이야기로 시작해 혼인 이야기로 끝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결합시키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그 관계는 무너집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 양이신 예수와 신부인 교회의 혼인잔치로 구원의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성경 전체는 무너진 혼인을 회복하는 구원의 웨딩 스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이야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기적이 아니라 “표적”

이 사건은 흔히 기적으로 불리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표적은 단순한 초자연적 사건이 아니라,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신호입니다.

성경에서 표적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요나의 표적도, 다른 표적들도 모두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향해 있습니다.
가나의 표적 역시 예수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첫 번째 표지판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한복음 2:3)

유대 문화에서 포도주는 기쁨과 회복, 행복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빠져도 포도주는 빠지면 안 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가장 기뻐야 할 자리에서 기쁨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잔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현실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누려도 마음이 공허한 이유는, 인생의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여자여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한복음 2:4)

마리아는 예수께 문제 해결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입니다.
“여자여”라는 호칭은 무례한 표현이 아니라, 공식적인 호칭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이제 육적인 어머니와의 관계를 넘어,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은, 인간적인 필요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온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십자가였습니다.



“내 때”라는 말의 의미

“내 때”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일곱 번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표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은 분명합니다.
나는 단순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위해 왔다.
그것이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돌항아리와 율법의 상징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요한복음 2:6)

이 돌항아리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사용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손과 몸을 씻음으로써 정결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정결일 뿐,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물로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이는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선언입니다.
외적인 씻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지는 참된 구원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다

“연회장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요한복음 2:9–10)

예수님은 인간의 요구에 끌려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요구를 통해 더 깊은 메시지를 드러내셨습니다.
포도주는 단순한 잔치의 포도주가 아니라, 장차 흘리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이 말씀은 훗날 성찬식에서 포도주로 상징됩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는, 결국 십자가에서 흘릴 피를 가리키는 표적이었습니다.



참된 포도주 예수

가나의 혼인잔치는 단순한 잔치의 위기를 해결한 사건이 아닙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인생에 찾아오셔서, 참된 포도주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문제 해결사로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인생의 본질적인 결핍이 채워집니다.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충만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첫 표적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인생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포도주가 아니라, 참된 포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인생을 온전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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