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8.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 (계 14:4-5)

요한계시록 8.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 (계 14:4-5)

이 글은 이지웅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8번째,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
의 설교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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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물의 의미

두 번째 표적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요한계시록 4장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은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한 하늘의 예배 장면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요한계시록 4:6)

이 네 생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이어지는 7절에서 설명됩니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요한계시록 4:7)

요한계시록 4장에 등장하는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입니다. 이 네 생물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네 생물과 동일한 존재로,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 창조 질서를 상징하는 존재들입니다.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두 번째 표적

두 번째 표적은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3:1)

이 짐승은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입니다. 외형만 보아도 위협적이고 흉측한 존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의 상징은 그 시대의 문화와 언어, 역사적 배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각 문화권마다 전형적인 공포의 상징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처녀귀신, 중국에서는 강시, 서구권에서는 드라큘라 같은 존재가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존재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머리 일곱, 뿔 열이라는 상징입니다.

이 상징은 신약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다니엘서에서 이미 등장합니다.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

다니엘서 7장은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다니엘 7:3)

다니엘이 본 네 짐승은 각각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짐승은 사자와 같고 독수리의 날개를 가졌습니다.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다니엘 7:4)

두 번째 짐승은 곰과 같습니다.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다니엘 7:5)

세 번째 짐승은 표범과 같으며, 특별히 머리가 네 개입니다.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다니엘 7:6)

네 번째 짐승은 매우 무섭고 강하며, 이전의 짐승들과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이 짐승에게는 열 뿔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열 뿔이 있더라”
(다니엘 7:7)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니엘이 본 네 짐승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핍박했던 역사적 제국들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짐승의 특징이 합쳐져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바로 머리 일곱, 뿔 열이라는 상징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이제 다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3:2)

이 짐승의 특징을 보면 분명합니다. 표범, 곰, 사자의 특징이 모두 섞여 있습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4장의 네 생물이 아니라, 다니엘서 7장에 등장했던 짐승들의 특징입니다.

즉,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해 온 제국적 권세의 집합체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짐승에게 누가 권세를 줍니까? 바로 용입니다.



용의 의미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용은 분명히 규정됩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요한계시록 12:9)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용이 등장하면, 그것은 곧 사탄입니다. 그런데 이 사탄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자신의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줍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사탄 그 자체는 아닙니다. 사탄에게 권세를 위임받아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역사 속 정치적·제국적 권력을 의미합니다.

이 짐승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요한계시록 13:3)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요한계시록 13:6–7)

이 짐승은 하나님을 비방하고, 성도들을 죽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사탄과 자신에게 경배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세 번째 표적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또 하나의 짐승이 등장합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요한계시록 13:11)

이 짐승은 매우 교묘합니다. 외형은 어린 양과 같지만, 말은 용처럼 합니다. 겉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으나, 그 말과 본질은 사탄적입니다.

이 짐승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13:12)

이 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숭배하도록 강요하는 종교적·이데올로기적 권력을 상징합니다. 이 짐승은 우상을 만들게 하고, 경배하지 않는 자들을 죽입니다.



666

이제 요한계시록 13장의 핵심인 666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한계시록 13:17–18)

첫째, 666은 짐승의 이름입니다.
둘째, 그 이름은 숫자로 표현됩니다.
셋째, 그 숫자는 ‘사람의 수’입니다.
넷째, 즉, 어떤 짐승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는 숫자가 없기 때문에, 문자에 숫자 값을 부여하는 게마트리아라는 체계가 있습니다. 이 체계를 적용하면 한 이름이 특정 숫자를 의미하게 됩니다.



게마트리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숫자가 있는 언어숫자가 없는 언어입니다.

영어에는 고유한 문자 숫자가 없습니다.
한글에도 숫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숫자를 표현할 때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거나,
“하나, 둘, 셋”처럼 말로 풀어 씁니다.

히브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어에는 숫자가 없기 때문에, 자음 하나하나에 숫자 값을 부여하여 숫자를 표현합니다.
이 체계를 게마트리아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알파벳 중
알렙은 1,
베트는 2,
이런 식으로 모든 글자에 숫자가 대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단어 하나를 읽으면,
그 단어의 의미와 함께 숫자 값이 동시에 떠오르게 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 성경에 등장하는 숫자들이 갑자기 생생해집니다.



다윗과 14

게마트리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예가 바로 다윗입니다.

히브리어로 다윗은 이렇게 씁니다.

דָּוִד

이 단어는 세 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ד(D) = 4

  • ו(V) = 6

  • ד(D) = 4

이 숫자를 더하면 14가 됩니다.

즉, 히브리어로 다윗이라는 이름을 발음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다윗이라는 인물과 숫자 14가 동시에 떠오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마태복음 1장 17절을 다시 읽어보면, 전혀 다른 깊이가 보입니다.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마태복음 1:17)

우리말 성경으로 읽으면 단순한 숫자 배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적 사고로 이 말씀을 들으면 이렇게 들립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
다윗부터 바벨론까지 다윗,
바벨론 이후부터 그리스도까지 다윗.”

이 족보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숫자는 우연이 아닙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숫자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네로 카이사르

이제 이 원리를 가지고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666은 짐승의 이름이며, 사람의 수라고요.

히브리어로 한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바로 이름과 숫자가 하나로 겹쳐집니다.

히브리어로 네로 카이사르는 이렇게 씁니다.

נרון קסר

이 글자 하나하나에 숫자 값을 부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נ(N) = 50

  • ר(R) = 200

  • ו(W) = 6

  • ן(N) = 50

  • ק(Q) = 100

  • ס(S) = 60

  • ר(R) = 200

이 숫자를 모두 더하면 정확히 666이 됩니다.

즉, 히브리어로 네로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이스라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네로’와 ‘666’이 동시에 떠오르게 됩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666의 정체입니다.



666과 144,000

요한계시록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항상 대조 구조를 사용합니다.

666 다음에 바로 등장하는 것이 144,000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4:1)

666은 “누구에게 속했는가”를 말하고,
144,000도 “누구에게 속했는가”를 말합니다.

짐승의 이름이 새겨진 사람은 짐승에게 속한 사람이고,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진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너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숫자가 아닙니다.
바코드도 아닙니다.
구원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 관점에서 666을 읽을 때,
요한계시록은 더 이상 두려운 책이 아니라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라는 위로와 소망의 책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사탄을 가리키는 헬라어 디아볼로스는 “이간질하는 자, 참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바로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거짓말, 비방, 중상모략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거룩함과 진실함이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구원의 기준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입니다. 우리의 삶과 말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증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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