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 고난의 이유 (계 12:1)

요한계시록 7. 고난의 이유 (계12:1)

이 내용은 이지웅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7번째,고난의 이유라는 제목으로 전하신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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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2장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요한계시록 12장입니다. 이 장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개의 사이클 가운데 세 번째 사이클, 곧 일곱 개의 표적이 시작되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그런데 12장으로 곧바로 들어가면 반드시 오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숫자와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면 거의 해석이 불가능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요한계시록에만 국한하지 않고,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숫자의 상징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개인적인 해석이나 한국 신학자의 독창적인 주장도 아닙니다. 히브리어를 실제로 사용하며 성경을 읽고 연구해 온 이스라엘 랍비 전통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비교적 안전한 숫자 상징들만 정리한 것입니다.

숫자의 상징을 “낮은 차원의 해석”이라고 무시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인간은 문화와 언어 안에서 이미 숫자의 상징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결정할 때 우리는 흔히 “삼세번”이라고 말합니다. 왜 하필 세 번일까요? 한국 문화 안에서 3이라는 숫자는 공평함과 충분함의 감각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숫자는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숫자의 상징

1이라는 숫자 ‘특별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1은 하나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신 ‘특별함’, ‘독립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숫자로 환원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라는 숫자 '증인과 확증'

2는 ‘증인’의 숫자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떤 주장을 할 때 혼자 증언하는 것은 효력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도 혼자가 아니라 두 명씩 보내셨습니다. 전도와 중보기도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성경학적으로 보면 새로운 복음의 증언에는 반드시 증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스가랴서에 나오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의 의미도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3이라는 숫자 '하늘의 숫자'

당시 소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하늘이 일곱 개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화적 배경을 모르면 에베소서나 골로새서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을 세 단계로 인식했습니다.

  • 하나님의 영역

  • 해와 달과 별이 있는 하늘

  •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이 표현은 문자적 구조가 아니라 유대적 언어 습관입니다.

4라는 숫자 '땅의 숫자'

4는 동서남북, 사방을 의미하며 땅과 피조 세계를 상징합니다.

7이라는 숫자 '완전과 완성'

이스라엘 사상에서 하늘(3)과 땅(4)이 결합된 숫자, 곧 7은 완전함과 완성을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숫자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이 원리를 철저히 따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셀 수 없이 많다고 말하면서도, 복음서에는 오직 일곱 개의 표적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또한 예수님의 “나는 ~이다”라는 자기 선언도 일곱 개만 기록합니다.
왜냐하면 7은 예수님의 사역이 완전함을 드러내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666 – 불완전함

완전한 7에서 하나가 빠진 숫자, 6은 불완전과 불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숫자가 바로 6입니다.

이 불완전한 숫자가 세 번 반복된 것, 즉 666은 불완전함의 극치를 상징합니다.
이 숫자는 어떤 개인의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체계의 본질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12, 24, 144, 그리고 144,000

12 –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흔히 12지파라고 불리지만, 실제 구성은 복잡합니다. 레위는 빠지고, 요셉 대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의도적으로 ‘12’라는 숫자를 유지합니다.

사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사사의 수는 더 많지만, 성경은 12명만 기록합니다. 이는 숫자가 실제 인원보다 신학적 상징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12명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죽은 뒤, 성령이 임하시기 전까지 굳이 한 장 전체를 사용해 맛디아를 뽑은 이유도 바로 이 숫자 때문입니다.

12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 12,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 12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24 –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백성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24장로는 이렇게 해석됩니다.

구약과 신약을 포함한 전체 하나님의 백성

 

144 –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총합

더 강조하고 싶을 때는 더하지 않고 곱합니다.

12 × 12 = 144


144,000 –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를 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144에 천을 곱한 144,000은 문자적 숫자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144,000을 문자로 해석하면, 이마에 새겨진 어린 양의 이름도 문자로 해석해야 합니다.
선택적 문자 해석은 이단적 해석의 전형입니다.

이마에 인이 새겨졌다는 것은 구약 문화에서 ‘소속’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의 구조

요한계시록 12장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 1절~6절

  • 7절~12절

  • 13절~17절

세 단락 모두 전쟁이 등장하며,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존재는 입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요한계시록 안에서 용은 분명히 사탄입니다.



여인과 아이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이 장면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을 묵시문학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헤롯이 등장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사탄이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헤롯은 도구였고, 진짜 배후는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진짜 표적은 교회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대신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용이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더라”

이 여자는 교회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이미 예언된 구조입니다.

“시온은 진통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남자아이는 단수지만,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복수가 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동시에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교회의 고난의 이유

교회가 고난당하는 이유는 죄 때문이 아닙니다.
말씀과 증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선택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박해를 받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를 공격합니다.



두 증인과 교회의 길

요한계시록 11장은 교회의 운명을 더 분명히 보여줍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이 두 증인은 엘리야와 모세로 상징되는 말씀의 증인, 곧 교회입니다.

그들의 길은 이렇습니다.

  • 사역

  • 죽음

  • 부활

  • 승천

이 길은 누구의 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길 외에 다른 길을 가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영광

십자가는 실패가 아닙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반드시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영광이 있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고난이 없다면 오히려 점검해야 합니다.

빛 가운데 살기로 결정했을 때, 어둠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빛 앞에서 사탄은 아무 힘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발자국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 길이 곧 영광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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