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3. 증언의 목적 (요한복음 1:6-13)

요한복음 강해 3. 증언의 목적 (요한복음 1:6-13)

이 글은 송태근 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
3번째, 증언의 목적이란 제목으로 
전하신 말씀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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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냄을 받은 자

요한복음 1장 6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이 짧은 한 절 안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명제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을 소개하는 방식은 단순한 인물 소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져야 할 정체성을 함께 드러냅니다.

첫째, 요한은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둘째,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 두 가지는 요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 보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보냄을 받은 인생

이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구약의 요셉을 떠올리면 분명해집니다. 요셉은 이 정체성의 눈이 열리기 전까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운명이 기구해서 팔려왔고, 재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끌려왔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보게 되었을 때, 요셉의 고백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보다 앞서 나를 보내셨나이다”

인생의 해석이 바뀌었습니다. 팔려온 인생이 아니라, 보냄을 받은 인생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절망과 답답함으로만 보이던 삶의 굴곡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나의 목적을 가진 여정으로 재해석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그냥 던져진 인생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강조점은 ‘보냄’ 자체가 아니라, 누가 보내셨는가에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목적있는 보내심

보냄을 받았다면, 그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7절은 그 목적을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증언자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증언의 대상은 빛,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증언은 단순히 전도나 선교라는 좁은 의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길고 먼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순례길에서 무엇을 드러내며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입니다.



감당할 자에게 주신 사명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맡기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물질과 은사, 재능과 지위와 명예를 주십니다. 반대로 어떤 이에게는 그런 것들을 거의 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는 분명한 편차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데 있어서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요? 많이 가진 쪽일까요, 아니면 없는 쪽일까요?

만약 가진 것이 유리하다면, 은사와 성공과 물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인생의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그런 삶을 진정한 성공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없는 쪽은 어떻습니까? 약하고 가난한 삶이라 할지라도, 그 약함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그 인생을 통해 증언을 받으십니다. 약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삶, 그 자체가 강력한 증언이 됩니다.

어느 쪽이 더 쉬울까요? 보편적으로 보면, 없고 약한 상태에서 증언자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실력 없는 자에게 어려운 역할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 더 어려운 사명을 맡기십니다.



빛은 모든 사람에게

요한복음 1장 7절은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이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빛이 세상에 비추었을 때,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어떤 이는 그 빛을 거부하고, 어떤 이는 그 빛을 받아들입니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늘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되었는지, 왜 믿어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결단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 사실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믿음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랑할 수 없도록, 오직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빛을 아는 것과 거부하는 것

요한복음 1장 9–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여기서 말하는 ‘알다’는 정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계의 문제입니다. 세상은 그분에 대한 정보를 몰라서가 아니라, 관계적으로 거절했기 때문에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11절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알지 못했다는 말은, 영접하지 않았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환영하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무지는 단순한 지식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매우 무서운 죄의 형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그러나 요한복음 1장은 놀라운 반전을 선포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 “된다”라는 말은 헬라어 기노마이로, 창조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는 단순한 신분 변경이 아니라, 새 창조를 의미합니다. 첫 아담의 실패 이후,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빚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또한 “권세”는 능력이 아니라 특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입니다. 이 특권은 세상의 어떤 지위나 성공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자의 정체성

요한복음 1장 13절은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위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부터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듯, 우리도 그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특권을 가진 자답게,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증언하며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가 신랑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신부가 되어 그분과 함께 누리는 영적 풍성함을 경험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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