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5) “나도 마게도니아와 같은 사건이 있나요?”
아래 글은 이지웅 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 중 5강 “나도 마게도니아와 같은 사건이 있나요?”의 설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설교는 아래 버튼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두 가지 구분
사도행전은 총 28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 중심으로 본다면, 1장부터 12장은
베드로가 주인공이고, 13장부터 28장은 바울이 주인공입니다.
지리적으로 나눈다면 세 구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
1장 1절 ~ 8장 3절: 예루살렘 지역
-
8장 4절 ~ 12장: 유대와 사마리아
-
13장 ~ 28장: 땅끝까지
즉, 사람으로 구분하든, 지역으로 구분하든 사도행전의 중심 전환점은 13장입니다. 이때부터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본격적인 전도여행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바울의 전도여행과 투옥
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거쳐 다시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와 보고하려 하지만, 유대인들의 거짓 누명을 쓰고 체포됩니다. 성전에 이방인을 데려왔다는 모함이었지요. 결국 그는 예루살렘에서 2~3일, 가이사랴에서 2년, 로마 감옥에서 2년을 보내며 약 4년간 투옥 생활을 합니다.
이후 잠시 풀려났다가 다시 전도 활동을 이어가는데, 이 시기를 흔히 ‘4차 전도여행’이라 부릅니다. 바울의 사역 전체 기간은 약 22년이며, 그는 총 4번의 전도여행을 감당했습니다.
서신 기록의 흐름
바울은 전도여행과 투옥 기간 동안 총 13권의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차 전도여행 후: 갈라디아서 (1권)
-
2차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2권)
-
3차 전도여행 중: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3권)
-
로마 옥중서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4권)
-
4차 전도여행 후: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3권)
이렇게 해서 총 13권의 서신을 남겼습니다. 다만 히브리서의 저자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와 복음
만나는 사람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복음
바울은 로마 제국의 대도시부터 작은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왕과 고위 관료 같은 권력자도, 이름 없는 평민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한
메시지는 한결같았습니다.
바울은 어느 누구에게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복음은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필요한 이유
왜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할까요? 이유는 단 하나,
죄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씀합니다. 죄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목사, 선교사,
순교자일지라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감당하신 예수
하나님은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며, 그 심판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대충 덮어두지 않으시고, 온 힘을 다해 아들의 몸에 쏟으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이나 어떤 존재도 “아직 죄값이 남아 있다”라고 시비 걸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진노가 이미 끝났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죄의 심판이 연기되거나 면제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미 담당하심으로 완전히 끝난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한 가지
사도 바울은 누구를 만나든 같은 복음을 전했어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소식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1차 전도여행부터 사람들은 “내가 죄인이라고?” 하며 거부했고,
돌로 치려는 박해가 반복되었지요. 그럼에도 바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듣는 것은 믿음의 선배들이 흘린
희생과 순교 덕분이에요. 그러니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고, 무엇보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만큼은 타협하지 말아야 해요.
2차 전도여행의 출발: 관계의 금 간 틈
1차 여정을 마친 바울은 안디옥으로 돌아와, 다시 방문해 성도들의 믿음을 세우려 했어요. 그런데 바나바·마가 문제로 큰 다툼이 생깁니다. 1차 때 중도 이탈했던 마가를 바나바는 다시 데려가자 했고, 바울은 반대했지요. 결국 바나바는 마가와, 바울은 실라와 헤어져 각각 사역을 이어갑니다. 복음의 한복판에서도 관계 갈등은 일어나고, 하나님은 각 길을 다른 열매로 사용하십니다.
연달아 닫힌 문: 거절이 아닌 인도
바울의 계획은 소아시아(에베소)였지만
성령께서 막으셨어요. 방향을 틀어 비두니아로
가려 하자 이번엔 예수님이 막으셨어요. 연거푸 막히자 바울은
해안가 드로아에서 서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여 주시지요.
이 사건은 분명히 말해 줍니다.
닫힌 문이 곧 거절은 아니에요. 하나님은 애초부터 바울 팀을
마게도냐로 보내길 원하셨어요. 우리의 삶에서도 막힘은 종종
방향 수정의 사인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낙심보다
분별의 기도를 드려야 해요. “주님, 제 삶의 마게도냐를
보여주세요.”
환상 직후의 현실, 감옥과 쫓김, 그리고 침묵
마게도냐로 건너가 첫 도시 빌립보에 도착하자마자 바울은
옷이 찢겨 벗겨지고 매질을 당한 뒤 감옥에 갇힙니다(행 16:22).
데살로니가에서는 3주 만에 박해로 쫓겨났고, 아덴(아테네)에서는
설교학적으로 완벽한 메시지를 전했지만 눈에 띄는 결실이 적었어요.
환상을 따라 순종했는데 왜 이럴까요? 하나님의 인도는 ‘쉬운 길’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길’임을 배우게 됩니다. 열매의 시점과 모양은 하나님이 정하시지요.
고린도에서의 각성, 오직 십자가, 오직 성령
연이은 막힘과 실패처럼 보이는 여정을 지나 고린도에서 바울은
결론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내 전도는 지혜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고전 2:1–5).
이때부터 바울은 사람을 설득하는 말의 힘보다 복음 그 자체와
성령의 능력에 더 깊이 의지합니다. 실패처럼 보였던 과정은 사실
하나님의 수업이었어요.
고린도의 역설: 언변·지식·은사 ‘풍성’, 그러나 미성숙
고린도 교회는 언변이 뛰어나고, 성경 지식이
풍부하며, 은사가 넘쳤습니다(고전 1:4–7).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영적으로 어린아이”라고 부르지요(고전 3:1–3).
바울이 제시한 기준은 분명합니다. 지식·은사·말재주가 성숙의
증거는 아니에요. 외적 능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고전 13장).
성숙의 기준 사랑의 15가지, 곧 예수님의 성품
사랑은 오래 참음, 온유, 시기하지 않음, 자랑·교만·무례 없음,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음, 성내지 않음, 악을 생각하지 않음, 불의가 아닌 진리와 함께 기뻐함, 그리고
모든 것을 참고·믿고·바라고·견디는 마음이에요.
이 15가지는 결국 예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그러니 성숙은
“얼마나 아는가/보이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예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고,
무례 대신 온유를 선택하며, 즉시 되갚지 않고 참아내는 것—사랑이 곧 성숙입니다.
말(言)의 거룩, 사탄의 도구가 아닌 주님의 도구로
‘마귀(디아볼로스)’의 본래 뜻은 거짓·이간·중상모략과 연결되어
있어요. 사탄이 가장 잘 쓰는 무기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부터 거룩해야 해요.
비하와 조롱으로 웃기려 하지 말고, 가능한 한 축복과 권면으로
영혼을 살리는 입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 문을
억지로 열지 않으시는 분이에요. 그분의 방식을
말에서부터 닮아가야 해요.
끝까지 달려가는 믿음
바울은 약 22년 동안 채찍·파선·강도·동족과 이방의 위협, 감옥을 수없이
경험했지만 복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교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유일한 구원자임을 전하는 것.
닫힌 문 앞에서 낙심하기보다 하나님의 마게도냐를 구하며,
지식과 은사를 추구하되 사랑으로 완성되는 성숙을 향해 가면
좋겠습니다. 복음은 멈추지 말아야 할 길, 사랑은 그 길을
끝까지 달리게 하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