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나의 묵상


시편 34편은 다윗이 인생의 밑바닥 같은 순간에 쓴 고백이에요.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말이 평화롭고 감사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이 시는 극도의 두려움과 수치의 자리에서 터져 나온 믿음의 고백이었죠.




미친 척하던 다윗

시편 34편의 표제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채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이 말은 사무엘상 21장 사건을 말합니다.
그때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던 중이었고, 살기 위해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다윗을 알아봤죠. “이 사람이 사울을 죽인 자 다윗 아니냐?”
이제 사울에게 쫓기다 블레셋에게까지 잡혀 죽을 위기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생존을 위해 미친 척을 합니다.
침을 흘리고, 문짝에 글씨를 긁으며, 자신을 모욕적으로 낮춰서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렇게 쫓겨나 들판에 숨어 있을 때, 그는 바로 이 시를 지었죠.



수치 속에서도 감사한 이유

그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말합니다.
이건 단순한 긍정의 말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자신을 붙들고 계시다는 확신의 표현이에요.

다윗의 마음에는 이런 흐름이 깔려 있습니다.

1. “나는 비참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보셨다.”

(시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연기했지만,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잊지 않으셨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 “내가 경험으로 알았다.”

“맛보다”라는 말은 단순히 ‘들어본다’가 아닙니다. 직접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논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체험한 고백인 것이죠.
굶주림 속에서도 먹을 것을 주셨고, 죽을 자리에서도 길을 내셨으니 다윗은 실제로 그 선하심을 ‘맛본’ 사람입니다.


3.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의식하겠다.”

(시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다윗은 두려움으로 떨던 순간에도, 결국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적인 수치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더 컸던 거죠.




나의 묵상

청년시절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여름사역(국내선교) 준비에 한창이었다.
아버지의 목회로 한번도 집다운 곳에서 생활해본적이 없었고,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다, 그 당시에는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장마철...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낮잠을 자고 있던 토요일. 밖에서 내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잠이깼다. 
무슨 일이지?
일어나보니 이미 매트리스 위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내가 거하는 유일한 공간 그 컨테이너가 물위에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너무 허겁지겁 나오는 바람에 슬리퍼 한짝이 전부였다. 허무하게 잠겨가는 교회와 나의 컨테이너 집을 바라보며 멍하니....정말 정신을 놓아버리기 일보적전...
엄마가 내 옆에서 말씀하셨다.
"OO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이 모든 판을 뒤집으시고 새롭게 하실것이다."
맞다. 나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하는 그 목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이 다 쓸어가 버리셨으면...하고 기도했었던 적도 있었기에...
그래서 원망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항상 우리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사는 수밖에...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다.
고통은 하나님의 임재임을 나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순간에도 샬롬을 누린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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