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성전정화사건을 일으키셨을까?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신 이유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의 모습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사건입니다.
평소 예수님은 온유하고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 묘사됩니다. 병든 사람을 고쳐 주셨고, 죄인을 품으셨으며, 굶주린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왜 갑자기 이렇게 격렬한 행동을 하셨을까요?
단순히 성전 안에서 장사를 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성전정화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유대인들이 어떻게 제사를 드렸는지, 왜 성전에서 동물을 팔았는지, 왜 환전상이 필요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경을 알고 나면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셨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전은 원래 무엇을 하는 곳이었을까?
예루살렘 성전은 당시 유대인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특별한 절기가 되면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특히 유월절과 같은 큰 절기에는 예루살렘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까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제사에는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소나 양, 염소, 비둘기와 같은 동물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제물을 데리고 성전까지 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겠지만,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도 살고 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고, 더 먼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걸어서 오랜 시간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물로 가져가는 동물이 여행 중 다치거나 병들거나 제물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사에 사용할 수 없는 동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주변에서 제사용 동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되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현실적인 필요가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사는 것이 잘못일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정화를 하셨다고 해서 제물을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무조건 죄였다고 단순하게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멀리서 온 순례자들에게 제물을 공급하는 것은 편의를 제공하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소나 양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비둘기 같은 비교적 저렴한 제물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단순히
“성전에서 동물을 팔았다.”
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마련된 공간과 제사 제도가 사람들의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예배를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할 제도가 오히려 사람들의 부담을 이용하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제물을 끌고 오는 일
조금 상상해 보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갈릴리에서 한 사람이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며칠,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걸어왔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양이나 염소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먼 길을 오는 동안 동물이 다쳤습니다.
제물로 드리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면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제물을 데리고 올 수도 없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온 사람이라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 주변에서 제물로 사용할 수 있는 동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편리한 제도였을 수 있습니다.
멀리서 제물을 끌고 올 필요 없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제물로 사용할 동물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편리한 제도가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왜 환전상이 성전에 있었을까?
성전정화 사건을 이해할 때 또 하나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바로 환전상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전 안에 환전상이 있었을까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화폐를 사용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는 여러 지역의 다양한 화폐가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동전에는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황제 숭배와 관련된 정치·종교적 분위기까지 생각하면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화폐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유대교 신앙에서는 우상과 관련된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돈
당시 로마 제국에서 황제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신격화와 황제 숭배가 제국 곳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황제를 신적인 존재로 표현하거나 황제에게 종교적인 경의를 표하는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를 신으로 섬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이미지와 종교적 표현이 담긴 동전은 유대교적 관점에서 불편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성전에서 사용되는 돈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성전세를 내거나 성전과 관련된 거래를 할 때에는 두로에서 발행된 은화인 두로화폐(Tyrian shekel)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 화폐는 당시 은 함량이 높고 신뢰성이 있었기 때문에 성전세와 관련된 거래에서 선호되었습니다.
따라서 각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온 다양한 화폐를 성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환전상이 등장합니다.
환전 수수료
환전상은 그냥 무료로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화폐를 교환해 주면서 일정한 수수료나 이익을 취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서 원화를 달러나 엔화로 바꿀 때 환전 수수료가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환전 자체가 죄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성전이라는 장소와 결합하면서 사람들의 신앙을 이용한 이익 추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제물이 필요하고, 제물을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하며, 그 돈을 사용하기 위해 환전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사람이 성전에 도착한 순간부터 여러 가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예배를 돕기 위한 제도가 예배를 방해
여기에서 성전정화사건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원래 제물 판매는 예배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환전 역시 성전세와 성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단이 목적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한 제도가 사람들의 돈을 끌어내는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성전은 일반적인 시장과 달랐습니다.
성전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소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들의 절박함과 종교적인 의무를 이용하여 지나친 이익을 취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장사가 아닙니다.
신앙을 이용한 착취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부분을 강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왜 강도의 소굴인가?
마태복음 21장 1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이 말씀은 정말 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여기서 장사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강도의 소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강도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것을 억지로 빼앗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왜 이런 강한 표현을 사용하셨을까요?
성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종교적인 의무와 절박함을 이용하여 돈을 얻는 장소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은 예배하는 곳
오늘날 표현으로 조금 거칠게 말하면 이런 심정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 사람들의 돈을 이렇게까지 빼앗아야 하느냐?”
예수님의 분노는 단순히 상업 활동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장소가 사람들의 욕심으로 오염된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한 공간에서 사람들의 신앙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엎으신 것은
성전정화사건을 단순하게 보면 이런 장면만 남습니다.
예수님이 화가 나서 장사꾼들의 테이블을 뒤엎으셨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이해하면 훨씬 무게가 달라집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들은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은 제물을 가져오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주변에서 제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성전과 관련된 헌금과 성전세를 위해 특정 화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환전상이 필요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섬겨야 할 제도가 사람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신앙을 이용한 돈벌이
사람들은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가격이 비싸면 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종교적인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나는 성전세를 내야 합니다.”
“나는 이 제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신앙적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위험한 부분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이용하여 과도한 이익을 얻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향해 강하게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의 목적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벌어진 타락을 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이라는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전의 목적을 사람들이 왜곡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은 원래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거룩한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성전은 그대로 있었지만 성전의 정신은 사라져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전정화는 단순한 청소가 아닙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라는 영적인 책망이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구약의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연결됩니다.
이사야 56장에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반면 예레미야 7장에서는 사람들이 성전을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처럼 여기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악을 행하는 모습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사람들이 성전을 의지하면서
“여기는 하나님의 성전이니까 우리는 안전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전이라는 건물 자체가 사람들의 죄를 덮어주는 방패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사도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의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예배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전정화는 구약 선지자들의 외침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이 진짜 뒤엎고 싶으셨던 것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뒤엎으신 것은 테이블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성전을 이용해 돈을 벌고,
사람들의 신앙적 의무를 이용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복잡하게 만들고,
거룩한 예배를 인간의 욕심으로 바꾸어버린 잘못된 종교 시스템 자체를 향한 심판의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정화사건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가?”
“내 신앙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앙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것을 향하고 있는가?”
“교회는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불안과 죄책감을 이용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2천 년 전 성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전정화사건의 핵심
성전정화사건을
“교회에서 돈 벌면 안 된다.”
라고 이해하면 너무 좁은 범위의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핵심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목적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훼손된 것입니다.
제물을 판매하는 것이 무조건 악한 것은 아닙니다.
환전하는 것도 무조건 악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돈을 앞세우는 도구가 되었을 때입니다.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제도가 사람을 이용하고,
예배를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시스템이 예배자를 부담시키며,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도와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신앙을 이용한다면,
그때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강력한 메시지가 됩니다.
예수님이 분노하신 이유
성전정화 사건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이유는 단순히 성전 안에 동물과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장사를 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하나님보다 사람의 욕심을 위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곳이 이익을 얻는 장소가 되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의 신앙적 필요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상인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돈을 쏟으셨습니다.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 말씀은 성전의 본래 목적을 다시 회복시키는 선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2천 년 전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쉽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전에서 저렇게 돈을 벌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돌아옵니다.
우리의 신앙은 정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있을까요?
기도하면서도 결국 내가 원하는 것만 구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는 않을까요?
교회에서 봉사하면서도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지지는 않았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과 약함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성전정화사건은 단순히 옛날 성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의 신앙을 바라보시면서도 똑같은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의 돈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이다.”
성전은 원래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기도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사람의 욕심으로 가득 차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직접 들어오셔서 뒤엎으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정화사건은 단순히 “예수님이 화를 내신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가 인간의 욕심으로 변질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 사건”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성전 안에 무엇이 들어와 있었는가가 아니라,
내 마음 안에는 무엇이
들어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서도 하나님보다 앞서 있는 욕심과 탐심,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신앙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하나씩 뒤엎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 제 안에도 주님이 뒤엎으셔야 할 것이 있다면 보여주십시오.”
성전정화사건은 바로 그 기도에서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