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35. 세상 속의 제자

1. 세상 속 그리스도인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시선을 조금 바꾸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제자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로 알라” (요한복음 15:18)
또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요한일서 3:13)
성경은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을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일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출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리와 질서, 가치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2. 왜 세상과 맞지 않는가
이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요한복음 3장에서 설명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6-8)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단순히 ‘이 땅에서 난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의 출처는 ‘위로부터 난 자’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상태 때문에 삶 속에서 끊임없는 부딪힘과 어색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체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처럼 불편함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끝까지 거부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출처’의 문제입니다.
3.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
예수님은 사람들을 분명히 두 부류로 나누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요한복음 7:28)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요한복음 8:19)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게 믿어지지만, 어떤 사람은 끝까지 알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주제는 바로 ‘무지’입니다. 알지 못함, 깨닫지 못함, 보지 못함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무지’를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죄로 규정합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한복음 16:9)
결국 가장 근본적인 죄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4. 세상 속 제자의 사명
그렇다면 이러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분명히 이 세상과 맞지 않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상의 선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선교지에서는 헌신할 수 있습니다. 준비된 기간, 공동체의 분위기 속에서는 열심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것은 일상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삶, 변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더 깊은 영적 싸움입니다.
5. 성령께서 하시는 일
예수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5:26)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방식은 특별한 음성이나 기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요한복음 15:27)
즉,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증인으로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6. 요셉의 일상 속 신앙
이러한 삶의 대표적인 예로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인생을 살았지만, 성경은 반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세기 39:2)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세기 39:3)
또 감옥에서도 동일하게 기록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 39:23)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통’의 의미입니다. 형통은 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형통입니다.
요셉은 노예로, 죄수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삶을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어디에 있든지 신뢰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7.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의미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특별한 기적이나 이벤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낼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도망치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에도 다시 일어나 하루를 살아내게 하시는 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8. 일상이 곧 선교지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특별한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미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우십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내느냐입니다.
예배로서의 일상, 말씀으로 채워지는 일상, 기도로 이어지는 일상, 그리고 삶으로 증거하는 일상.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부르심입니다.